설립 방식-규모 놓고 논의 시작 학-연 컨소시엄 형태 제안 많아
수학적 예측 모델을 활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감염병 확산 상황을 전망하는 전담기구가 국내에 설립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권동혁 질병관리청 위기대응연구담당관은 최근 대전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서 열린 ‘신변종 감염병 대응에서의 수리모델링 역할과 비전’ 워크숍에서 “감염병예방법 개정을 통해 전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할 분석연구지원기구(기관 또는 조직)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과학 방역’을 내걸면서 감염병 수리모델링 연구를 정책에 활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정부 기관과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감염병 예측 분석 결과를 내고 정부의 의사결정에 활용될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미국 내 40개 연구팀의 수리모델링 결과를 공유하는 플랫폼 ‘코로나19 전망 허브’를 구축해 미국 50개 주별 향후 4주간 확산세 분석을 제공했다. 확산세에 따른 병원 수요를 예측하는 프로그램 ‘코로나19 서지’를 공개해 병원마다 필요한 중환자 병동과 인공호흡기 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은 감염병 연구 7개 대학이 모인 ‘주피터 컨소시엄’을 발족해 비상사태 과학자문그룹(SAGE)에 확산 전망과 거리 두기 정책 비교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SAGE는 영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방향을 조언하는 기구다.
과학계는 수리모델링 분석기관의 설립 방식과 규모를 놓고 논의에 들어갔다. 코로나19에 대응해온 다수의 전문가는 여러 연구팀이 모인 학연 컨소시엄 형태의 수리모델 연구기관을 제안한다. 정일효 부산대 수학과 교수는 “감염병이 시작할 때 연구자들의 데이터 접근을 빠르게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며 “여러 분야 감염병 전문가들이 협력하는 연구 네트워크를 만들어두면 미리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질병청이 산하에 직접 관련 기관이나 조직을 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질병청은 최근 수리연에서 수리모델링에 참여해온 전문인력 1명을 채용하고 데이터 관리 인력을 충원하며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질병청에 통계 분야가 아닌 수학자가 채용된 것은 처음이다. 질병청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설치된 슈퍼컴퓨터 기능을 일부 빌려 감염병 확산 예측을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산하나 질병청에 수리모델링을 수행하는 기관과 분석을 지원하는 기관을 따로 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수위가 밝힌 로드맵에 복지부에 방역 데이터를 담당하고 지원하는 기관인 ‘질병역학정책개발원’(가칭)을 신설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지난해 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각각 감염병연구소와 바이러스연구소를 각각 가져가면서 나타난 부처 간 쪼개기 상황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바이러스 연구는 협력이 중요한데 연구기관 설립을 놓고 과기정통부와 복지부가 대립하면서 황당하게 두 기관이 만들어졌다”며 “목적을 분명히 정해 거버넌스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