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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인근 집회 놓고 새 정부 눈치보는 경찰 [기자의 눈/조응형]

입력 | 2022-05-13 03:00:00

법원 판단 ‘존중-불복’ 오락가락
집무실 용산이전 취지와 엇박자
집회-경호 조화시킬 방안 찾아야





1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맞은편 도로에 각종 집회단체들의 시위 문구가 붙여져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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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항고 방침을 확정했습니다. 곧 서울경찰청에서 입장문 나갈 겁니다.”

12일 오후 1시경 경찰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날 서울행정법원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의 행진을 허용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였다.

판결 직후에는 경찰 측에서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던 터라 불복 방침을 정한 것으로 이해하고 기사를 쓰겠다고 회사에 보고했다.

그런데 경찰이 2시간 뒤 낸 자료에는 ‘즉시항고’란 단어는 없었다. 그 대신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하고, 14일 집회·행진을 법원에서 허용한 범위 내에서 관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일부 언론에선 경찰이 즉시항고를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경찰은 “즉시항고는 그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을 추가로 내고, 법무부 승인을 받아 항고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오락가락하는 모습에 기자들 사이에선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건지, 불복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법조계에선 경찰의 항고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시항고해도 행진이 진행되는 14일 전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 측 고위 관계자도 “즉시항고는 의지 표명”이라며 실질적 효과는 없음을 인정했다.

이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찰이 얼마나 당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적어도 기자에게는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대통령 관저 반경 100m 이내 집회 금지’ 조항에서 ‘관저’에 ‘집무실’이 포함된다고 보고 무지개행동의 행진을 금지했다. 하지만 ‘관저’와 ‘집무실’의 사전적 의미가 다르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경찰의 자의적 법 해석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반대 의견에 귀를 닫고 집무실 인근 집회 금지를 고수했다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청와대를 버리고 집무실을 용산으로 정했다. 용산공원 담장을 낮춰 시민들과 눈을 맞추겠다고도 했다. 경찰도 이날 자료에서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보호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집무실 인근에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걸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경찰은 이제라도 집무실 이전의 취지를 살려 집회의 자유와 대통령 경호를 조화시킬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조응형·사회부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