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성공 비결은 여자들의 축구 도전기라는 의외성에 있다. 응원석에나 앉아 있던 여자들이 발톱 빠져가며 달리는 모습에서 ‘여자가 무슨 축구냐’는 편견이 깨지는 놀라움과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도 공 차는 여자 보고 신기해하는데 100년 전 공 때리는 여성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골때녀’ 이전에 ‘공때녀’가 있었다.
▷1923년 동아일보가 소녀들만의 정구대회를 열겠다고 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정구는 말랑한 공을 쓰는 소프트테니스. ‘방 안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 허약한 조선 여자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당시는 여성이 쓰개치마로 얼굴 가리고 다니던 시절이다. 이화학당의 체조 수업을 보고 “여자가 어찌 운동을” “이화학당 출신은 며느리로 들이지 않겠다”는 양반도 있었다. 결국 남자 관중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남성들 시선에서 벗어나 마음껏 기량을 펼치라는 배려도 작용했다.
▷그해 6월 정동 제1고등여학교에서 열린 1회 조선여자정구대회는 대성공이었다. 경성의 숙명 정신 동덕 배화 진명 경성과 개성의 호수돈, 공주의 영명까지 8개 여고(현재 중학교에 해당)에서 100명이 참가했는데 관중이 3만 명이나 몰려들었다. 경성 인구가 30만 명이던 시절이다. 긴치마에 댕기머리 휘날리며 공 때리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남자들이 학교 담장 위로 올라가 대회장 옆의 보성초등학교 담벼락이 무너지고 배추밭이 망가졌다. 점잖은 백구두 차림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떼쓰는 신사들도 있었다. 초대 우승팀은 진명여고였다.
▷스포츠를 통한 여성 지위 향상을 목표로 시작된 동아일보 정구대회는 2006년부터는 남녀가 모두 즐기는 대회로 성장했지만 스포츠 성 격차는 여전하다. 초등6∼고3 학생들에게 ‘최근 한 달간 스포츠 활동에 참여한 횟수’를 물었더니 남학생은 11회, 여학생은 8회라고 답했다(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3월 발표). 한국 여학생의 운동량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운동 자체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2016년 학교체육진흥법이 바뀌어 여학생들의 체육 활동 지원은 정부의 의무가 됐다. 골때녀, 공때녀들이 많아지도록 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