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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이재명의 反지성, 윤석열의 半지성

입력 | 2022-05-18 03:00:00

이재명의 주도권과 검수완박, 민주당의 반지성주의 보여줘
윤석열도 반지성 비판했지만 본인은 과연 지성적인지 의문



송평인 논설위원


미국 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1963년 ‘미국의 반(反)지성주의’란 책에서 미국이 유럽에 비해 반지성적이라고 보면서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요인 중 하나로 다수 의사의 단순한 관철을 민주주의로 보는 선동정치를 들었다.

호프스태터는 미국 정치사에서 반지성주의를 조장한 인물 중 하나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꼽는다. 브라이언은 1896년, 1900년, 1908년 세 차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뽑혔으나 공화당 후보에게 모두 패했다. 금(金)본위제를 비판하는 그의 ‘금십자가 연설(금십자가에 농민을 못 박았다는 연설)’은 경제적 약자인 농민들의 이익을 우선한 것이지만 그의 주장대로 금본위제 대신 은화(銀貨)의 자유주조권이 허용됐다면 20세기 경제대국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연이은 패배를 겪은 후 1912년 대선에서야 대학 총장 출신의 우드로 윌슨을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키면서 급진파들의 장악에서 벗어났다. 남북전쟁 이후 민주당 후보로 첫 집권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만 해도 자신과 당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가를 우선했다. 그러나 이후 브라이언의 등장으로 민주당은 약 20년간 혼란을 겪었다. 윌슨, 루스벨트, 케네디, 클린턴, 오바마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 민주당의 전통은 브라이언의 선동정치를 극복하고 난 뒤에 확립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수의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호프스태터라면 “다수의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민주주의가 반지성주의를 조장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국회에서 다수인 더불어민주당이 숙의는커녕 숙의를 위한 최소한의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고 자당 의원을 무소속으로 빼내면서까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통과시킨 과정은 반지성적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올 3월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온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기본소득론’ 같은 선동적 주장을 펴다 패한 정치가라는 점에서 한국판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라고 할 만하다. 민주당이 이 전 지사를 대선 후보로 뽑은 것과 최근 검수완박 법안의 강행은 그 성격이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반지성주의의 긴 혼란기를 지나고 있다. 한국 정당 정치의 발전은 민주당이 언제쯤 급진파들에서 벗어나 윌슨 같은 합리적 인물을 당을 이끌 후보로 뽑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호프스태터는 지성(intellect)과 지적 능력(intelligence)을 구별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사법시험에 일찍 합격하는 것은 지적 능력을 보장할지언정 지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성은 어떤 사안을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일반화해서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 큰 틀 속에서 한발 앞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지성보다 직관(intuition)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프스태터는 민주주의를 이용한 선동정치 외에도 기독교 복음주의와 기업의 실용주의 정신을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열성적인 기독교인과 실용적인 기업가 중에는 직관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다. 기독교와 기업가 정신은 그 자체로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줬듯 그것이 반지성주의와 연결되면 큰 해악이 될 수 있다.

대선 운동 당시 손에 왕(王)자를 그리고 TV 토론에 나온 윤 대통령은 얼마나 지성적인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서 사업이나 관직의 성공과 무속적 신앙의 기이한 병존이 목격됐다.

대통령집무실의 광화문 이전 약속을 하루아침에 용산으로 바꾼 것은 약속 내용의 중대한 변경이 있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전을 결정한 쪽은 성공을 장담하지만 세심한 검토를 거친 것이 아니어서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이런 결정은 직관적일 수는 있어도 지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직관은 신비적인 구석까지 있다. 부인이 무속인과 전화통화를 할 때 ‘조국이 대통령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라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누구 것이었던가. 출퇴근하면서까지 청와대에서는 하루도 안 살겠다는 비상식적 고집은 과연 무속과 무관한가. 상대편의 반지성주의를 비판하기 전에 본인의 지성부터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