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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에 앞서 “네 것 맞아” 인정해 주기[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입력 | 2022-05-18 03:00:00

〈154〉 형제의 장난감 전쟁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7세 오빠와 5세 여동생이 장난감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 울음소리가 나서 부모가 달려와 보니 큰아이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움켜쥐고 있다. 동생은 “오빠가 안 줘. 오빠가 밀었어” 하면서 더 크게 울어 젖힌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럴 때 많은 부모들이 “오빠야, 동생 아가잖아. 줘”라고 한다. 큰아이가 “싫어. 내 거야” 하면, “너 아주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거잖아. 지금 가지고 놀지도 않잖아. 내년에 학교도 가야 하는 애가!”라고도 한다. 그래도 큰아이가 “내 거야. 난 주기 싫어” 하면 부모는 장난감도 많으면서 왜 이렇게 욕심이 많냐며 혼을 내고 만다. 어떤 부모들은 엄마 아빠가 없을 때는 네가 동생을 돌봐야 하는데 그깟 장난감 하나 못 주냐고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장난감이 큰아이 것이 맞다는 것이다. 동생을 돌보는 것, 양보하는 것, 서로 나누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 다 옳은 말이다. 인간이 배워 가야 하는 것이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른들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할 만큼 어려운 가치들이다. 가르쳐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런 가치들을 가르치려면 순서가 굉장히 중요하다. 자칫하면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례와 같은 상황에서 먼저 가르쳐야 하는 개념은 ‘소유’이다. 누구의 것이냐를 먼저 따지고 인정해 줘야 하다. 큰아이가 “내 거야” 하면, “어디 보자. 네 거 맞네”라고 해줘야 한다. 이 아주 간단한 수긍과 정당성의 인정이 중요하다. 동생에게도 “이 장난감은 오빠 거야”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는 큰아이에게 “이 장난감 네 건데 동생 좀 빌려줄 수 있어?”라고 묻는 것이다. 동생에게도 “오빠한테 빌려달라고 해봐”라고 시킨다. 이렇게 말해도 좀 전에 그렇게 싸웠기 때문에 큰아이가 선뜻 빌려주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야, 빌려달라고 말까지 했잖아”라면서 다시 혼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아이는 억울해진다. 안 빌려주고 싶을 때도 있다. 그 행동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이 개념을 배우는 순서가 그렇다. 소유를 먼저 배워서 그것이 편안해졌을 때 나누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길 때도 있다. 이럴 때는 하루 날을 잡아서 모든 장난감을 다 꺼낸 다음, 이름표 스티커를 준비해서 각각 자기 장난감에 스티커를 붙이게 한다. 서로 자기 것이라고 하는 장난감은 가위바위보를 하든지, 비슷한 장난감 2개를 골라서 그 자리에서 하나씩 소유를 정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네 이름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만 네 거야”라고 말해준다. 누구의 것인지 구분해 주고, 그 권리를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장난감 주인이 안 빌려준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동생에게도 “빌려줄 법도 한데, 좀 속상하지? 어쩔 수 없어. 내일 또 빌려달라고 해봐. 내일은 마음이 바뀌기도 해. 오늘은 다른 거 가지고 놀자”라고 말해 줘야 한다. 동생이 “나는 저거 가지고 놀고 싶은데, 다른 건 재미없단 말이야”라고 떼를 쓸 수도 있다. 이럴 때 기어코 큰아이 장난감을 뺏어서 동생을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냥 “엄마가 재미있게 놀아줄 테니까 있는 것 가지고 놀아 보자”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런데, 부모가 동생과 놀아주고 있으면 큰아이가 그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면박 주지 말고 “너도 와서 놀자. 동생하고 장난감 3개 가지고 놀고 있거든. 너도 3개 들고 와”라고 해주었으면 한다. 큰아이가 또 “내 건데…”라고 할 수 있다. “네 것은 다 놀고 네가 잘 챙기면 돼”라고 해주자. 어떤 아이는 같이 놀다 장난감이 망가질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글쎄, 뭐 던지지도 않는데 고장이 날까? 일단 재미있게 놀고, 만약에 고장이 나면 고치면 되지. 우리 그냥 재밌게 놀자”라고 아이를 안심시켜 주었으면 한다.

내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데, A라는 아이가 오늘 깜박하고 학교에 연필을 안 가져왔다고 가정하자. 내 아이의 필통에는 연필이 다섯 자루나 있었다. A가 말도 안 하고 내 아이의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 썼다. 이 사실을 안 내 아이가 화를 냈다. 그런데 선생님이 “너는 연필도 많으면서 뭐 그런 걸로 화를 내니?”라고 했다면, 내 아이는 얼마나 억울할까. 내 것이 아닌 것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그 주인에게 양해나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이것을 못 배우면 친구의 연필을 그냥 가져다 쓰고도 도리어 “연필도 많으면서 난리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