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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순직 경찰관 유족·사건 당사자 ‘42년 만에 화해’

입력 | 2022-05-19 13:26:00

1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 앞에서 배모씨와 유족 대표 정원영(54)씨가 서로 끌어 안고 있다.© 뉴스1


“그저 시민 지킨 경찰인데 왜 숨어 살아야 했는가 그게 제일 억울했거든요.”(박덕님씨)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말 죄송합니다.”(배모씨)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망한 함평경찰서 경찰관 4명의 유가족과 사건 당사자가 19일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는 이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 앞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숨진 함평경찰서 경찰관 4명의 유가족과 그들의 죽음에 연루된 배모씨가 ‘사과와 용서, 화해와 통합’이라는 슬로건 아래 만나는 행사를 개최했다.

만남에 앞서 경찰 유가족과 배씨, 5·18조사위 임직원 등 20여명은 순직 경찰관을 추모하며 현충원 묘역 앞에서 30분 동안 참배했다.

5·18조사위는 지난해 1월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시위 진압 작전에 참여한 계엄군과 시위 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피해를 본격 조사해 왔다.

이 자리에 나온 경찰 유가족은 1980년 5월20일 광주노동청 앞에서 배씨가 운전한 고속버스의 진입을 막기 위해 대형을 갖추고 있던 함평경찰서 순직 경찰관들의 아내와 자녀들이다. 순직 경찰관들은 배씨가 운전하던 고속버스에 깔려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날 배씨는 고속버스 안으로 최루가스가 들어와 눈을 뜨지 못한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당시 상황을 간략히 전했다.

배씨는 “당시 상황이 꿈에라도 나왔으면 변명이라도 하겠지만 명확히 기억나는 게 없다”며 “유족분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 말고는 드릴게 없다”며 울먹였다.

유족 대표인 정원영(54)씨는 “지난 42년 동안 한국 현대사의 아픔 속에서 억울한 5월의 가해자가 돼 아픔조차 호소할 수 없었다”며 “이 자리에 나오는게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갔지만 감성적으로는 쉽지 않았다”고 그간의 마음 고생을 드러냈다.

정씨는 “아버님들의 죽음은 역사가 밝혀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정작 죽음으로 내몰았던 책임자들은 외면했지만 이제야 그 책임을 지겠다는 배씨를 만나 오늘 사과를 받으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을 시작으로 사과해야할 당사자들의 사과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종철 5·18조사위 부위원장은 “이번 만남을 계기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경찰이 입은 사망·부상 등의 피해조사가 이뤄져 사실상 외면받았던 순직 피해 경찰관들의 명예가 회복됐으면 한다”며 “배씨 역시 5·18 민주화 운동 당사자이면서 피해자인데 쉽지 않은 발걸음을 해준 유족과 배씨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가 끝난 뒤 유족과 배씨는 손을 맞잡으며 그간의 아픔을 달래듯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