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청년 1686명 정신건강 측정
직장인 A 씨(34)는 최근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업무량이 확연히 늘고 야근이 많아진 데다 상사와 갈등까지 생기면서 위장장애도 겪고 있다. 주변 시선이 신경 쓰여 선뜻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지 못했던 그는 최근 정신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서울시의 다면적 인성검사(MMPI-2)에서 치료가 필요한 ‘위기군’에 해당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MMPI는 개인의 성격 및 정신병리적 상태를 측정하는 검사로, 1943년 미국 미네소타대병원에 의해 개발돼 널리 쓰이고 있다.
○ 검사 신청 청년 10명 중 4명 ‘위기군’
서울 청년의 정신건강이 위험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에 신청한 서울 거주 19∼39세 청년 1686명을 대상으로 최근 MMPI-2 검사를 실시했는데 709명이 정신건강 어려움을 겪는 ‘위기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4명꼴이다. 위기군 중 절반이 넘는 361명은 당장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으로 확인됐다.청년들은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나 불행(63.1점), 걱정이나 스트레스(62.7점) 등을 평균보다 많이 호소했다. 50점이 평균 수준인데 검사에 참여한 청년들의 정서적 고통은 평균 65.5점에 달했다. 회의감(60.4점)이나 불안·분노 등 부정적 정서(58점)도 높게 나타났다.
한 번도 정신건강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취업준비생 B 씨(27)도 검사를 받아보니 자신감 결여와 현재 삶에 대한 불안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청한 참가자 중에는 스스로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던 평범한 참가자가 더 많았다”면서 “생각보다 많은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이상신호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위기군으로 분류된 참가자를 대상으로 전문가 그룹 상담 등을 진행할 방침이다. 다음 회차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 참여자 모집은 이르면 이달 말 서울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시작된다.
○ 정신보건 예산 확충 시급
청년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지만 관련 전문 인력과 예산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검사에서 고위험군 판정을 받은 참가자는 361명이었지만 이들을 상담할 서울시 위촉 임상심리전문가는 19명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관련 예산이 한정적인 탓”이라고 했다.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등이 청년 정신건강의 예방적 점검을 수시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20, 30대 외래진료 환자가 눈에 띄게 늘었고,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청년 정신건강 문제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의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데 중장기적으로 선진국들처럼 보건 예산의 5% 이상을 정신보건 예산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