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마라토너 이봉주 편
12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기흥의 한 카페에서 마라토너 이봉주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지난 12일 인터뷰를 위해 이봉주 선수를 만났을 때 사실 속으로 좀 놀랐습니다. 2년이 넘게 근육긴장이상증이란 희귀질환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쾌활했기 때문이죠. 근육긴장이상증은 의지와 관계없이 근육이 수축하여 뒤틀리거나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질환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배 쪽 근육이 계속 잡아당기는 바람에 허리를 펴기 힘든 상태지요. 이 선수를 인터뷰 한 것은 그 자신이 투병 중인데도 불구하고 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에 봉사활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히려 아픈 뒤에는 전처럼 자주 못가 되레 미안한 마음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파 보니까 몸이 불편하다는 게 어떤 건지 더 피부로 와 닿았다고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인생 자체가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100m 달리기에서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는, 평발에 짝발인 아이. 목장 주인이 되고 싶어 들어갔던 농고에서 친구 권유로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 특별활동. 제대로 배우고 싶어 1년을 꿇고 다른 학교로 재입학. 1년 만에 재정난으로 육상부가 없어져 다른 학교로 다시 전학. 3초 차이로 놓친 올림픽 금메달.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무소속으로 뛴 세계대회에서 한국 신기록 수립. 44회 출전에 41회 완주한 국민 마라토너. 은퇴 후 찾아온 희귀병….
우리는 마라톤을 자주 인생에 비유합니다. 그래서인가요? 그가 선수 시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인생과 마라톤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참… 저도 기자지만 20~30대 젊은 선수에게 ‘인생’에 대해 묻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선수도 그러더군요. 그 나이에 자신이 인생에 대해 뭘 알겠느냐고요. 그런데 나이도 들고, 은퇴도 한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마라토너가 자신만의 마라톤을 완성하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한 것 같다고요.
그는 술을 마셔도 대리운전을 부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차를 두고 간 뒤 아침 해장마라톤으로 가지러 갔다는 군요. 유럽 신혼여행 때도 새벽에 에펠탑 주위를 뛰었고요. 부상이나 상중이 아니면 매일 새벽 달리기를 안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그도 사람이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어떨 때는 달리는데 누가 넘어뜨려 주지 않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는 군요. 그만큼 힘든 과정을 이겨냈기에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인생과 마라톤은 확실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경주에 나선 우리들도 등수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마라톤을 완주해야 한다는 것이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금메달이 결정되고, 세계신기록 수립이 실패한 순간 모든 선수들이 그 자리에서 레이스를 중단하는 경기였다면 우리가 과연 마라톤에 대해 지금과 같은 경외심을 가질까 하는 것이죠.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전승이 짜릿한 것처럼 힘든 걸 극복하고 이겨냈을 때 더 살만하지 않겠습니까. 이봉주 선수가 하루빨리 쾌차해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