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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 먹는 방법 왜 똑같을까? 개인 컨디션따라 맞춤 조제

입력 | 2022-05-23 03:00:00

[Question & Change]〈14〉‘알고케어’ 정지원 대표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서 ‘뉴트리션 엔진’이 조제한 영양제가 담긴 유리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왼쪽은 뉴트리션 엔진에 들어가는 영양제 보틀.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양제를 먹는 방법은 왜 똑같을까.’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38)가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영양제를 찾다가 가진 질문이다. 자정이 넘어 퇴근하기 일쑤라 늘 몸이 천근만근인데 도대체 무슨 영양제를 먹어야할지 몰랐다. 주변에 물어보니 사람들은 그저 예전부터 우리에게 이름이 친숙한 영양제 제품을 먹고 있었다.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영양 성분이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술 마신 다음 날 등 컨디션에 따라 챙겨야 할 성분이 다를 텐데….

정 대표는 당시 회사 선배에게 영양제 잘 챙겨 먹는 비결을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 “그게 뭐가 힘든가요? 아내가 챙겨주는 대로 먹으면 되는데.” 하지만 정 대표 주변에는 그런 아내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내게 정말로 필요한 성분의 영양제를 챙겨줄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싹텄다.
○ 제품 중심의 영양제 시장을 서비스 시장으로
그가 김앤장을 나와 2019년 설립한 알고케어는 인공지능(AI) 기반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대표 제품은 실시간 영양관리 솔루션 ‘나스(NaaS·Nutrition as a Service)’. 머신러닝 기반의 AI닥터가 개개인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하고 알고케어의 의사와 약사 연구원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에 따라 필요한 영양 성분의 종류와 용량을 계산한다. 이를 바탕으로 캡슐커피 머신을 닮은 ‘뉴트리션 엔진’ 기기가 영양제를 제조하는데, 지름 4mm 알갱이 형태의 비타민 B·C·D, 마그네슘, 멀티미네랄 등이 맞춤형으로 배합된다.

각 개인 맞춤형 배합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이용자가 공동인증서로 동의하면 건강검진 기록이나 복용 중인 약, 진료 내역 등이 데이터에 반영된다. 애플 헬스나 삼성 헬스 등 제3의 기관으로부터 받아온 활동량 데이터 등을 통해서도 이용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스캔한다. 이용자가 매일 디바이스의 터치스크린 화면에 자기 이름을 입력하고 숙취 과로 불면 등의 상태를 기록하면 AI닥터는 입력된 정보들을 토대로 계속 상태를 추적하면서 컨디션에 맞게 다양한 성분의 영양제를 조합한다. 축적된 데이터들은 AI 학습을 통해 고도화된다.

정 대표는 “기존 영양제 시장은 제품 중심의 시장이다 보니 공급자가 제품을 판매하면 이 후 관리는 개인이 해야 했고,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복용하거나 용량조절을 할 수 없었다”며 “알고케어는 제품 중심의 시장을 서비스 시장으로 구도를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사업모델과의 차별성을 인정받은 알고케어는 지난해와 올해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2회 연속 혁신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창업지원 프로그램 ‘C랩 아웃사이드’에도 선정됐다.

알고케어는 다음 달 B2B 서비스인 ‘알고케어 앳 워크’ 출시를 통해 본격적으로 영양제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다. 회사 사무실에 설치된 디바이스를 통해 임직원들은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고, 회사는 직원의 복지와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첫 창업은 실패, 퇴근도 여전히 늦지만 창업이 주는 행복 더 커
정 대표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서울대 법대와 로스쿨, 변호사 생활까지 10년 넘게 법의 길을 걸으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기존의 불편한 부분을 해소하는 아이템으로 창업한다면 변호사로 일하는 것보다 임팩트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 4년의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든 이유다.

알고케어는 정 대표의 첫 창업이 아니다. 그는 2018년 블록체인 기반의 주식공매도 플랫폼을 다른 두 명과 함께 공동 창업했다. 하지만 사업을 이어갈수록 의견이 맞지 않아 1년 만에 그만뒀다. 퇴사 한 달 만에 팀을 꾸려 변호사로 일할 때 생각했던 아이템으로 두 번째 창업을 했다.

정 대표는 “첫 창업으로 얻은 교훈은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스타트업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성공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되지만 안 돼서 이렇게 해봤다’는 마인드로 자신이 한 일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지금도 밤늦게 퇴근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계기로 사업을 더 발전시킬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회사 경영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여성 창업자뿐 아니라 남성 창업자도 마찬가지일 텐데, 한창 예쁘게 자라나는 아이를 충분히 못 보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변호사 때는 업무가 많이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바빠도 일이 즐거워 예전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꿈: 집 안에 캡슐커피 머신을 들이듯 알고케어를 통해 건강 관리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주는 것.

#매일 영양제 챙겨먹기의 효과: “‘아침에 일어나 이불 정리하기’처럼 작은 성취감이 모여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데 도움 될 것.”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