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산업1부 차장
“오늘부터 나는 한국인이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인앱결제 강제금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이 통과하자 ‘반(反)빅테크 연대’의 선봉장으로 꼽히는 에픽게임스의 팀 스위니 대표가 이런 트위터 게시글을 띄웠다. 세계 최초의 입법으로 구글과 애플에 한 방 먹인 한국에 세계는 놀라워했다. 다양한 결제 방식이 나오고 수수료도 내려가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란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법이 통과된 지 9개월, 시행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변한 게 뭐냐는 한숨이 나오고 있다. 콘텐츠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19일 카카오는 웹툰·웹소설 결제 수단을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앱) 내에서 충전할 경우 다음 달 1일부터 가격을 20% 인상한다고 공지했다. 티빙·웨이브 등 일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과 플로 등 일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은 이미 앱 내 이용권 가격을 15% 올린 상태다.
이에 대해 구글은 특정 결제 방식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한 법에 따라 앱 개발사에 선택권을 준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앱 백화점’에 입점해 서비스를 누리면서 앱 장터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수수료를 내지 않고 플랫폼에 무임승차하려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상황은 예견된 결과였다는 지적이 많다. 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초’로 글로벌 빅테크의 횡포를 견제한다는 데만 집중했을 뿐 양자가 수긍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촘촘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정한 결제 방식’의 정의는 모호했고, 인앱결제가 앱 장터와 별도의 시장인지 아니면 통합된 시장인지 등도 구체적으로 따지지 못했다. 외부 결제 수수료를 높이는 등 빅테크의 예상되는 대응에 대한 대비도 부족했다.
지금부터라도 법 취지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법을 보완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하면 국제적인 입법 공조에도 나서야 한다. 한편으론 지금의 앱 생태계를 구축한 빅테크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적정 수수료 체계를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한 소통과 논의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단지 빅테크를 규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앱 생태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진지한 고민에 나서야 할 때다.
김재영 산업1부 차장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