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혜 ‘표현의 감각’
머플러가 예쁘다는 세연의 칭찬에 이웃주민 희란은 이렇게 묻는다. ‘줄까요?’가 아닌 ‘가질래요?’라 묻는 희란에게 세연은 단번에 호감을 갖는다. ‘가질래요?’라는 말은 원하면 얼마든지 가져가라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띈다고 생각하는 세연은 희란이 타인을 배려하는 대화가 몸에 익은 사람임을 느낀 것이다. 반면 계약직인 세연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내가 실수했나본데 미안하다’고 사과한 직장상사와는 끝내 가까워지지 못한다. ‘본데’라는 표현으로 애매하게 사과를 하는 그의 무책임함과 이기심이 매사에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18일 출간된 ‘표현의 감각’(애플북스)은 미묘한 언어의 차이가 불러오는 관계 변화를 그린다. 21일 전화로 만난 작사가 출신의 한경혜 작가는 “예전엔 노래가사가 멜로디 없이도 자립이 되고, 낭송이 됐는데 지금은 귀에 꽂히는 게 중요해지다보니 한글파괴가 심각해졌다. 비유와 묘사의 실종, 언어파괴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던 차에 적확한 단어 사용에 대한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년’과 ‘점점’,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등 수많은 히트곡을 쓴 작사가다.
“예전에 노래 녹음을 하던 중이었어요. 한 후배가 ‘커피 마셔도 돼요?’라고 묻는데 그 말이 정말 예쁜 거에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후배는 ‘그 부분 들어보면 안돼요?’라고 부정어로 묻기에, ‘너도 ’돼요?‘라고 물어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선 부정어가 지나치게 많이 쓰여요. 전 평소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긍정어를 최대한 많이 쓰려고 해요. 작가는 세상에 말을 거는 일인데 기왕이면 좀 더 긍정적으로 말을 걸면 좋잖아요.”
“가사는 짧은 문장 안에 기승전결을 담아야 하기에 단어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인지 가사를 쓰다보면 색다르고 낯선 단어, 숨어있는 예쁜 단어 하나쯤은 쓰고 싶은 욕심이 나요. ‘화사한 미소’보다는 ‘해사한 미소’라는 표현이 더 예쁠 때가 있죠.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노래 제목을 지을 땐 ‘구속’이란 단어를 일부러 썼어요. 어감이 안 좋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문장의 호흡이 어긋나는 순간 의미가 확장이 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득했죠.”
그는 2004년 단편소설 ‘비행’으로 등단하면서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사가로 활동할 때는 우선 작사 의뢰가 들어와야 하고, 음악을 언어로 해석한 글을 써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하는 소재의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행복하다. ‘독서는 제2의 창작행위’라 생각하는 그는 이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수상작을 빠짐없이 읽고, 독서를 할 때면 메모지를 옆에 두고 생경한 단어나, 자신에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 문장을 적는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