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일 순방을 마무리했다. 우크라이나 위기 속에 임한 첫 아시아 순방 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역내 중국 견제 고삐를 죄며 대미 투자 등 자국을 위한 실리도 챙겼다.
백악관 풀 기자단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 에어포스원은 24일 오후 6시를 조금 넘겨 요코타 공항을 출발했다. 이로써 지난 20일 오후 오산 공군기지에서 시작된 바이든 대통령의 4박5일 한·일 순방 일정은 공식 종료됐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 순방 초점은 크게 ▲인도·태평양 역내 대중국 견제 공조 전선 확보 ▲동아시아 핵심 동맹 심화 ▲반도체 등 핵심 공급망 협력 강화 ▲북한 핵·미사일 대응 메시지 ▲미국인을 향한 국내 메시지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바이든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국 견제용으로 평가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공식 발족했다. 지난해 10월 구상이 공개된 IPEF는 2017년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이후 줄어든 자국의 역내 존재감을 제고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당초 올해 초 출범이 목표였던 IPEF는 중국 견제용이라는 세간의 평가, 그리고 관세 철폐 등 실질적인 시장 접근성 확대 혜택이 미미한 점 때문에 각국에 참여를 설득할 유인이 많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식 발족 시기도 몇 차례 미뤄졌다.
그러나 지난 23일 공식 출범한 IPEF에는 그간 예상보다 많은 국가가 참여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서 7개 국가가 참석한 것은 물론, 그간 미온적으로 평가됐던 인도도 참여 국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순방지인 한국과 일본도 초기 참여국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후 일본, 호주, 인도와의 안보 협력체인 쿼드(Quad) 대면 정상회의를 통해 대중국 견제 고삐를 더 바짝 좼다.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역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나 무력 또는 위협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로운 분쟁 해결” 등 중국 견제 메시지가 포함됐다.
이는 그간 대만관계법에 따라 대만에 자기방어용 무기를 지원하면서도 직접 군사 개입 여부에는 모호함을 유지했던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한 발언이라는 분석을 낳았다. 중국은 즉각 외교부 등을 통해 불만을 표시했다.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은 정책 변화는 없다며 진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두고는 불필요하게 중국과의 긴장을 고조했다는 평가와, 의도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벗어나 명백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北 도발 여부 시종일관 관심…바이든, ‘김정은 대화’ 여지 남겨
이번 순방을 앞두고 북한의 도발도 내내 주목됐다. 미국 정보 당국에서는 북한의 7차 핵실험 재개 내지 추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바이든 대통령 순방 시기에 맞춘 도발 경고가 꾸준히 나왔다. 특히 풍계리 핵실험장을 정비 중이라는 경고가 제기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에서 순방 기간 북한을 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미국 전략 자산 전개는 물론 핵·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이 명시됐다.
아울러 일본 기시다 총리와의 공동성명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 및 최근 ICBM 실험 규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가 거론됐다. 순방 마지막 날 발표된 쿼드 정상 성명에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규탄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담겼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순방 기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향후 대화 가능성도 열어뒀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과의 향후 대화 조건을 묻는 말에 “그가 진실한지, 또 그가 진지한지에 달렸다”라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순방 기간 자제한 북한이 이달 말 미국 메모리얼데이 연휴에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그들(북한)은 미국의 공휴일을 좋아한다”라며 북한의 메모리얼데이 도발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한·일과 동맹 심화…대미 투자 이끌어내며 자국 실리도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한·일 순방은 동아시아 핵심 동맹 심화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특히 지난 2월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내 동맹 단속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행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 한국 도착 이후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는데,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며 동맹의 지평을 기존 안보·군사 영역에서 경제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관련, 미국에서는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바이든 대통령 순방에 동행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순방 등에 함께하기도 했다. 러몬도 장관은 세계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공급망 정보 제출을 요구하는 등 대응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발표하는 등 자국 실리 챙기기도 잊지 않았다. 현대차는 바이든 대통령 방한 이틀, 사흘째인 21~22일 연이어 55억 달러, 3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발표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강력한 국내 메시지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대차 조지아 투자와 관련, “매우 많은 미국인을 위한 경제적 기회를 의미한다”라고 했다. 그는 순방 첫날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만난 미국 협력사 노동자를 향해 “투표를 잊지 말라”라고 당부하며 중간선거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을 출발한 바이든 대통령은 경유지인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거쳐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후 9시를 넘겨 백악관에 도착할 예정이다. 미국 언론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순방 행보 중 대중국 행보를 특히 주목하며 향후 국제사회에 일으킬 반향을 살피는 모습이다.
CNN은 이번 바이든 대통령 첫 아시아 순방을 정리하는 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국에 틀림없는 메시지를 보내는 데 활용했다”라며 “유사한 국제 질서 위반은 미국의 맹렬한 반응을 일으키리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이 그간 역내 국가와의 관계 구축 및 세력 형성에 주력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움직임에 대항하려 몇몇 조치를 취했다”라고 했다. 다만 “이런 조치가 중국의 야망을 억제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워싱턴=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