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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부치는 노래’[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44〉

입력 | 2022-05-25 03:00:00


낮은 자 중에서도 더 낮은 사람들이 있다. ‘로마’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로마라고 하면 이탈리아 로마를 떠올리겠지만 유랑의 삶을 사는 집시가 로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유대인, 정신질환자와 더불어 “해결”하려고 했던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집시가 아니라 로마라고 부른다.

스스로를 문명사회라고 일컫는 유럽은 로마에 관해서는 문명인의 자격을 잃는다. 그들은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눈물은 닦아주면서도 로마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20세기는 누구의 눈물이냐에 따라 눈물에 등급을 매기는 야만의 시대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50만 명에 이르는 로마 사람들이 나치의 손에 죽었다. 그러나 유럽은 그들을 위로하기는커녕 그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쫓아내 중금속으로 오염된 곳에 살게 하고 어떤 곳에서는 여성들에게 불임수술을 시켰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로마 시인 레크사 마누시는 ‘20세기에 부치는 노래’에서 20세기가 그들에게 해준 게 뭐냐고 물었다. “우리의 어두운 삶에 햇빛을 가져다줬습니까?/우리 여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줬습니까?” 이런 상황이니 아이들도 아이들답게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로마 시인 마테오 막시모프는 아이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의 다른 아이들은 서로를 사랑하며 놀지만/나는 울어야 합니다./다른 것은 가진 게 없으니/당신에게 눈물을 팔겠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라고 다를까. 지금도 눈물에 등급을 매기는 건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폴란드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자국으로 몰려오는 난민들을 환대하면서도 로마는 냉대한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로마 난민들을 냉대하는 이중성은 폴란드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 아니 세계의 현실이다. “20세기여/그대는 슬픈 로마 사람들을 위해 뭘 준비해 놓았습니까?”라는 마누시의 항변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