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송해길’ 가보니 노점 15곳중 9곳이 최근 가격 올려 기본안주 없애고 양 줄여 버티기도 “양 적다” 불평 늘면서 상인도 울상… 단골 서민들 “500원만 올라도 부담 여기마저 오르면 어디서 사먹나”
3개 2000원→1개 1000원… 10년만에 어묵값도 올라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인근 정양님 씨가 운영하는 노점에 메뉴판이 걸려 있다. 정 씨는 3월부터 떡볶이는 1인분에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어묵은 3개 2000원에서 1개 1000원으로 약 10년 만에 가격을 올렸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땅콩도 이젠 못 드려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5번 출구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박모 씨(42)는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기본 안주로 주던 땅콩과 진미채를 지난달부터 내지 못하고 있다. 안주값은 7000원씩을 유지하고 있지만 양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올렸다. 최근 재료값이 크게 오른 탓에 그대로는 버틸 수 없었다고 했다. 박 씨는 “‘예전엔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주더니 요샌 조금만 준다’고 불평하는 손님이 꽤 계시다”며 “많이 드리지 못해 나도 속상하다”고 했다. 손님 우민우 씨(35)는 “이 동네는 값도 싸고 양도 많아 친구들과 10년 가까이 찾고 있는데, 요즘은 좀 아쉽다”고 했다.
○ “재료값 두 배 돼 별수 없어”
최근 물가 급등의 여파가 서민이 주로 즐기는 노점 음식마저 직격하고 있다.탑골공원을 들른 어르신이나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청년들이 요기와 술추렴을 하는 종로구 ‘송해길’(육의전빌딩∼낙원상가) 일대 노점과 식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격이 착한’ 것으로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이 일대 가게에서는 5000원이면 넉넉하게 배를 채우고, 1만 원짜리 한 장이면 소주 한 병에 안주를 두 개까지도 곁들일 수 있었다.
식당, 주점도 마찬가지였다. 주점 ‘고향집’ 주인 박모 씨(55)는 지난주 부추전 가격을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리는 등 안주 가격을 각각 1000∼2000원씩 올렸다. 박 씨는 “재료값 상승으로 도무지 이윤이 남질 않아 어쩔 수 없었다”며 “오른 가격을 듣고 주문을 취소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국밥집 주인 이규복 씨(68)는 “7개월 전에 국밥 가격을 6000원으로 1000원 올렸는데, 더 올려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 “여기마저 오르면 어디서 즐기나”
특히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 상승의 영향이 컸다. 도넛을 파는 정 씨는 “작년까지 2.5kg에 2800원 하던 밀가루 한 포대가 요즘 4500원씩 하고, 다른 재료비도 대체로 2배 가까이로 올랐다”고 하소연했다. 20년간 분식을 팔아온 노점상 정양님 씨(69)는 “18L짜리 식용유 한 통이 작년 3만5000원이었는데, 요즘 6만 원”이라며 “물가가 올라 상인은 상인대로, 손님은 손님대로 힘들다”고 했다. 정 씨는 3월부터 떡볶이 1인분 값을 4000원으로 1000원 올렸다.단골들은 울상이다. 종로구에 사는 양제규 씨(67)는 “포장마차에서 한 병에 2500원 하던 소주가 3000원이 됐다”면서 “주머니가 가벼운 손님에겐 500원, 1000원도 큰 차이다 보니 요즘 불평들이 많다”고 했다. 가끔 지하철로 이 동네 노점을 찾는 게 낙이라는 A 씨(78·서울 양천구)는 “요즘 포장마차 음식값이 모두 올라 전에는 2개씩 시키던 안주를 1개만 시키고 있다”며 “돈 없는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계속 올 수 있을까 싶다”고 했다.
이날 한 노점상에서 술을 마시던 한 노인은 주인이 안주값을 올릴 생각이라고 하자 “지금도 비싼데 더 오르면 못 사먹는다. 여기마저 오르면 대체 어디 가서 사먹느냐”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