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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코로나’ 식당 이용 금지하자 베이징 시민들, 캠프장 몰려갔다[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2-05-26 03:00:00

15일 중국 베이징 창핑구 빈수이 공원 인근에 캠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텐트를 쳐놓고 있다. 최근 베이징 당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강력한 방역 규제를 실시하면서 야외에서 캠핑을 즐기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15일 중국 베이징 도심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인 창핑구 미래과학성 빈수이(濱水) 공원을 찾았다. 강을 따라 조성된 수변 공간이 특징인 이 공원 일대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텐트와 그늘막이 가득했다. 바로 옆 도로 또한 주차된 차들로 빼곡했다.》




이날 오전 7시 무렵부터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 텐트는 2시간쯤 지난 오전 9시경 더 이상 설치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날씨가 좋은 일요일을 맞아 베이징 일대의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온 듯했다. 전기 설비, 개수대, 화장실 등이 마련된 정식 캠핑장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일종의 노지 캠핑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베이징 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시내 모든 식당에서의 취식을 금했다. 이에 따라 야외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캠핑의 매력이 더 부각되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당국의 강도 높은 ‘제로(0) 코로나’ 정책 등으로 해외 및 국내 관광이 여의치 않자 캠핑으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 캠핑을 나왔다는 리창(李强·41) 씨는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바깥 활동을 못 하다 보니 답답했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캠핑을 코로나19 때문에 시작한 셈”이라고 했다.


급성장하는 캠핑시장
시장조사 업체 아이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의 캠핑시장 규모는 2014년 77억1000만 위안(약 1조4647억 원)에서 2020년 168억 위안(3조1915억 원)으로 늘었다. 연평균 11∼15%의 성장세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78% 급증한 299억 위안(5조6801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355억 위안(6조7439억 원), 2025년에는 562억 위안(10조6763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신용정보 사이트 톈옌차(天眼査)에 따르면 2019년 2877개였던 중국의 캠핑 관련 신규 기업 수는 2020년 8713개, 2021년 2만975개로 계속 늘었다. 전체 캠핑 관련 기업이 4만6000여 개인데 이 중 60%가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 이후 생긴 셈이다.

특히 올해 초부터 중국에서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당국이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주요 도시를 봉쇄하면서 캠핑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숙박공유 플랫폼 투자(途家)는 올해 노동절 연휴(4월 30일∼5월 4일) 중 캠핑장 예약이 지난해보다 4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포털 사이트 바이두에서도 4월 한 달간 캠핑 관련 검색어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배 가까이 늘었다.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에서도 캠핑 관련 상품 검색이 145% 증가했다.

중국에서는 전기 설비, 화장실 등이 잘 갖춰진 캠핑장이 드물기에 좋은 캠핑장을 예약하는 일 또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일부 캠핑장은 이미 올가을까지 예약이 꽉 찬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경제평론가 쑹칭후이(宋淸輝)는 경제매체 차이징에 “중국 경제가 고속 성장하면서 중산층이 늘었고 캠핑 수요 또한 증가하고 있다”며 중국 캠핑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진단했다.


여성 캠핑족도 급증
여성 캠핑족도 많다.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타오바오라이브에 따르면 올 들어 4월까지 캠핑용품을 구매한 사람 중 여성이 72.7%로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가족 단위 캠핑족이 많아지면서 여성들이 소비 주도권을 쥐고 적극적으로 텐트, 테이블, 바비큐 그릴 등 캠핑용품을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호화 캠핑을 뜻하는 ‘글램핑’도 각광받고 있다. ‘화려하다’는 뜻의 영어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을 합한 신조어로 야외의 불편한 잠자리, 화장실, 벌레 등을 싫어하는 여성들이 안락한 집과 큰 차이가 없는 공간에서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중국어로는 세련된 캠핑이라는 뜻의 ‘징즈루잉(精致露營)’으로 불린다.

글램핑장에는 취침 및 조리 시설, 이동식 화장실과 샤워실 등이 갖춰져 편안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아직까지는 소득 수준이 높은 상하이, 항저우, 난징 등에만 있지만 점차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젊은층과 여성들이 즐겨 이용하는 쇼핑몰 ‘샤오훙수(小紅書)’에는 경쟁적으로 글램핑 체험 영상 및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에 샤오훙수 내 캠핑 관련 게시물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71% 증가했다.

그간 서구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의 제품을 주로 소비하던 중국 소비자들이 자국 브랜드의 상품을 소비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무가오디(牧高笛·모비가든), 저장쯔란(浙江自然·저장네이처), 싼푸후와이(三夫戶外·싼포), 카이러스(凱樂石), 눠커(나客·네이처하이크), 웨이다리둬(維達利多·비달리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상하이증시에 상장된 무가오디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5340만 위안(약 101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당초 해외 캠핑용품 브랜드의 위탁가공 업체로 시작한 무가오디는 2003년부터 자체 브랜드를 출시해 인기를 얻었다. 캠핑용 베개, 에어매트 등을 생산하는 저장쯔란 역시 상하이증시에 상장했다. 지난해 상반기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한 1억3700만 위안(약 260억 원)에 달했다.


낙후된 시민의식은 문제

캠핑시장 급성장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약 3900만 원)를 넘어야 캠핑 경제가 활황을 보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역시 2014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9000달러를 넘었고 이를 전후한 시기에 캠핑붐이 일기 시작했다.

중국은 2020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약 1만 달러에 불과하다. 2045년 이후가 돼야 3만 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코로나19가 중국의 캠핑 경제 활황 시기를 20년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문화, 질서의식 등이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산업 규모만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캠핑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와중에 일부 업체는 더러운 화장실과 개수대 등을 방치하는 관리 부실로 비판받고 있다.

주차 시설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차들이 뒤엉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날 기자도 빈수이 공원 일대를 빠져나오는 데 수 시간을 들였을 정도로 애를 먹었다. 리 씨는 “사람들의 자연보호 및 질서 의식 등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다시 이곳을 찾을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