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기술에 대한 열기는 빠르게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로 인해 사회의 온도가 놀랄 정도로 뜨거워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로 한정해 보더라도 블록체인, 메타버스, NFT가 말 그대로 사회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늘 그렇듯 자성의 시간이 찾아온다. 현재 NFT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그러하다.
“NFT는 투자 혹은 투기의 수단일 뿐이다”라는 말에도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절반의 사실"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진 NFT를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으로만 접근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신기술이 늘 그래왔듯,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들더라도 NFT는 다양한 산업에 접목돼 발전을 거듭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NFT와 산업이 만난 현장을 취재하는 시리즈 기사를 준비했다.
“잘 만든 IP, 황금알 낳는 거위 안 부럽다”
요즘 콘텐츠 업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영화, 게임, 음악,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장난감 등 다른 장르의 상품으로 개발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원소스멀티유즈(OSMU)' 때문이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뽀로로 캐릭터의 경제적 가치는 5조 7000억 원, 펭수는 이러한 뽀로로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슈퍼 IP(지식재산권) 하나만 대박이 나도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끝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 예술, 금융, 스포츠, 게임, 유통가로 분야를 넓히고 있는 NFT는 대표적인 IP 사업으로 꼽힌다. 웹툰 장면이나 캐릭터, 스포츠 선수 등의 인기 IP를 NFT로 발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다양한 분야의 기업이 자체 캐릭터 등의 IP를 NFT로 제작한 뒤 마케팅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NFT는 블록체인에 연결된 고유코드가 부여되기 때문에 각각의 NFT는 다른 토큰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NFT와 특정한 디지털 파일이 일대일로 매칭되고, 이를 통해 해당 파일이 원본임을 입증할 수 있다. 블록체인 위에 소유권과 거래 내역이 명시되므로 디지털 소유권 증명서로도 쓸 수 있다. 즉, NFT를 구매하면 복사본이 아닌 원본을 구매한다는 신뢰를 가질 수 있어,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파일의 IP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출처=카카오엔터테인먼트
NFT는 일반적으로 미래에 가치가 올라간다는 믿음으로 인해 거래가 된다. 매력적인 IP는 미래에도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기 캐릭터나 셀러브리티의 NFT를 구매한다.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창작자의 NFT를 팬심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세대에서 입소문이 난 유명작가의 NFT는 출시되자마자 완판이 되기도 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인기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NFT 300개는 카카오자회사 그라운드X가 운영하는 클립 드롭스에서 공개한 지 1분 만에 완판됐다. 이외에도 카카오가 보유한 드라마, 웹툰, 게임 등의 다양한 IP는 ‘잘 팔리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NFT 사업으로의 확장성이 좋다.
일회성 NFT는 과거의 마케팅.. “이제 충성심 기반으로 한 NFT 커뮤니티가 대세”
출처=현대자동차
브랜드 인지도와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NFT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기업들도 있다. 기아자동차는 국내 자동차 업계 최초로 NFT를 발행했다. 기아 디자인센터 디자이너가 제작한 '기아 EV NFT'는 기아의 전기차 라인업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현대차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 최초로 커뮤니티 기반 NFT 시장에 진출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22CES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혁신적 이동경험이 가능한 세상’이란 컨셉으로 메타모빌리티를 공표한 바 있다. 이러한 세계관을 알리기 위해 현대자동차는 PFP(소셜미디어용 프로필 형태) NFT 프로젝트 메타콩즈(Meta Kongz)와 고릴라 PFP NFT를 발행했다. 현대차는 이용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트위터와 디스코드에 전용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하고, NFT 홀더에게 지속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LG생활건강은 자사의 화장품 브랜드인 ‘빌리프’ 세계관을 담은 ‘빌리프 유니버스’ 캐릭터를 NFT로 제작한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캐릭터 포즈나 상황을 NFT에 반영해 소비자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치킨 브랜드 BBQ도 자사의 닭 캐릭터 ‘치빡이’를 NFT로 발행했다.
탈 통신 사업을 확장하는 통신사도 NFT 사업에 나섰다. SK텔레콤은 통신 3사 중 처음으로 NFT를 발행한 뒤, 갤럭시 22 사전예약을 진행하면서 예약자를 추첨해 'T우주', '피치스' NFT를 제공했다. 각각의 NFT 소유자는 추첨 등급에 따라 우주패스, 피치스 한정판 굿즈나 커뮤니티 입장권 등을 지급받았다. SK텔레콤은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인 ‘이프랜드’에 NFT를 도입해, 코인 경제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KT는 콘텐츠 자회사 스토리위즈의 ‘간신이 나라를 살림’ 웹툰을 NFT로 만들어 청약을 진행했다. 이 NFT는 추후 이벤트 참여 인증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자체 캐릭터 무너를 활용해 커뮤니티 NFT를 발행한다. 무너 NFT 홀더는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고 NFT 2차 발행 시 우선 구매권도 받을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디스코드와 트위터 등의 SNS로 전용 커뮤니티 채널도 오픈한다.
롯데홈쇼핑이 만든 자체 캐릭터 벨리곰, 출처=롯데몰
유통업계에서도 NFT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는 캐릭터 작가 레이에이와 협업해 3종의 화이트데이 히어로 NFT를 증정했다. 세븐일레븐이 발행한 세븐NFT는 화폐가치를 지닌 코인이 탑재됐다. 클레이튼 재단에서 발행하는 가상화폐 ‘클레이’가 적립돼 있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현금화가 가능하다. GS리테일도 메타콩즈와 NFT 프로젝트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롯데홈쇼핑은 버추얼 휴먼 ‘루시’와 영화 ‘마녀2’의 NFT를 한정 판매한다. 노준 작가와 협업해 자체 캐릭터 벨리곰의 NFT를 발행하기도 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자체 캐릭터 푸빌라 NFT 1만 개를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2월 미국 3D 아티스트와 함께 꽃 이미지로 NFT를 제작해 고객에게 나눠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기존 이벤트 대비 2배 이상의 참여율을 끌어낼 수 있었다.
다양한 기업이 NFT와 혜택을 결부시키는 것은 이를 투자자산을 넘어 하나의 커뮤니티를 구축하려는 의도에서다. 전문가들은 이를 ‘팬덤 커뮤니티’라고 부른다. NFT를 제작한 기업에 대한 고객 충성심을 확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NFT 팬덤이 구축되면 해당 NFT에 대한 수요가 늘고 가치가 올라간다. 더 많은 팬을 모으는 선순환 구조가 생기는 것이다. BAYC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의 NFT는 BAYC를 알아보는 유저가 많기 때문에 IP도 더 강력해지는 효과가 있다. 인기가 더 많은 인기로 이어지는 구조다. NFT 프로젝트가 흥행하면 제작 기업 역시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
NFT 사업, 이제는 ‘가치’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때
인하대학교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포켓몬 빵의 띠부씰을 찾기 위해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는 소비자들이 있다. 스티커를 가지면서 소비자가 즐거움이나 기쁨을 얻듯, NFT라는 컬렉션도 희소성을 통해서 가치를 얻게 된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소비자들은 NFT 가치(가격)가 몇 배 이상 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누구도 가치의 상승을 보장하진 못하지만 소비자는 그런 기대감에 근거해 즐거움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홍익대 경영학과 홍기훈 교수에게 기업들이 NFT 발행에 나서는 이유 중 마케팅 이외의 것은 없는지를 물었다.
“정확히 그 포인트다. 마케팅을 위한 것이다. (소비자와 기업 입장에선) 굳이 NFT를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최근 들어 블록체인과 NFT와 관련해 ‘지금 사업을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블록체인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업마다 꼭 NFT를 이용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용하면 좋은 곳도 있지만, 아닌 곳도 있다”
“콘텐츠 산업에 있는 기업처럼 NFT를 쓰면서 효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있다. 하지만, 농구가 뜬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농구 사업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농구 사업을 하지 않는다고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자사가 잘하는 것과 NFT가 관련이 없다면 NFT 사업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코카콜라 NFT 콜렉션, 출처=코카콜라
그렇다면, NFT를 통한 마케팅은 제대로 된 ‘마케팅’일까? ‘NFT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허황된 약속만 하는 마케팅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플랫폼 브랜딩을 연구하는 한신대학교 IT영상콘텐츠학과 허태윤 교수는 “NFT가 최근 주목을 받으면서, 마케팅이나 브랜드 이미지에서 앞서가려는 기업들이 NFT 사업을 시작하는 일이 많다. MZ세대(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는 NFT나 메타버스 같은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사업들이 모두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코카콜라는 자신들의 브랜드 자산을 NFT로 발행했다. 1950년대에 만든 자판기 원형이나 가상현실 플랫폼에서 착용하는 버블 재킷, 병을 따거나 얼음 위에 콜라를 따를 때 나는 소리 영상 등 NFT를 만들고 있다. 이 NFT는 경매에서 한국 돈 기준으로 6억 원 이상에 팔렸다”고 했다. 기업에서 독특한 NFT를 발행하고, 그게 비싼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뉴스’가 된다.
단순히 마케팅만을 위한 게 아니더라도 명품 브랜드 산업에선 짝퉁 거래를 막기 위해 NFT 인증서를 발행하기도 한다. 위/모조품 거래를 막기 위해 명품을 살 때 제조와 유통 과정에 대한 정보가 담긴 디지털 정품 인증서를 발행하는 것이다. SSG닷컴은 이커머스 최초로 NFT 기술을 적용해 명품에 대한 디지털 보증서 ‘SSG개런티’를 내놓았다. 허 교수는 “명품 브랜드나 패션브랜드 쪽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에 활용한다면, 리세일(재판매) 때 오리지널을 개런티하는 것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오로지 마케팅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지킨다는 측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SSG개런티에 대한 설명, 출처=SSG닷컴
허태윤 교수는 “브랜드는 어떤 활동이 지속되고 그 결과물이 누적되면서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NFT가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대해선 답을 내리기 어렵다. 누군가 투자를 해서 돈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브랜드가 추구하는 서비스나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시적인 활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브랜드마다 마주하는 현실은 조금씩 다르다. MZ세대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겠다고 생각하면 NFT나 메타버스도 적합할 수 있다. 코카콜라도 시즌에 따라, 새로운 트렌드에 따라 매년 여러 마케팅을 시도한다”고 했다.
NFT 가치에 거품이 끼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NFT 사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도 생겼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금은 NFT의 효용성을 찾아가는 단계라는 주장도 나온다. ‘NFT 디지털 자산의 미래’의 저자인 이임복 작가는 “많은 기업이 단순 마케팅만을 위해서 NFT에 도전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은 NFT를 통해서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 기업들이 실험하는 단계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NFT로 고객을 유치하면서 자체 생태계를 더 활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GS리테일이 GS페이 활용하게 하거나, CU에서 CU앱을 더 많이 쓰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디자인만 예쁘게 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이제 이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NFT가 어떤 효용성을 줄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국내 NFT 거래소 NFT MANIA의 이광호 대표는 “기존 마케팅은 NFT만 증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멤버십 혜택을 주는 시도도 많이 나온다. 이렇게 고객을 유치하면 기존에 고객 유치를 위해서 쓰던 마케팅 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다. TV광고 등의 프로모션과 비교했을 때 멤버십 혜택에 들어가는 비용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NFT를 무료로 증정할 때 수십~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사 홈페이지에 와서 회원가입을 한다고 해보자. 기존 마케팅 방식으로도 이렇게 큰 규모로 이용자에게 노출되는 것은 쉽지 않았던 일”이라고 했다. NFT를 발행하는 것 자체엔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고, 멤버십 혜택 제공에 필요한 비용도 크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은 적은 비용으로도 긍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뜻이다.
플라이피쉬클럽, 출처=플라이피쉬클럽 유튜브
그는 적절한 혜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디다스처럼 NFT를 제작하고 판매를 한다면, 고객들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원하게 된다. NFT 가격의 상승이나, 가격에 맞는 독점적인 혜택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1월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플라이피쉬클럽(Flyfish Club)가 회원권을 NFT로 발행해 약 180억 원의 금액을 모으기도 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면 회원권 NFT를 소유해야 하며, NFT가 있다면 회원권을 소유하지 않은 손님도 초대할 수 있다. 이처럼 NFT의 가치는 ‘특별한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이광호 대표는 “초판 NFT를 무료로 받은 경우엔 큰 혜택을 바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신, 비용을 지불했다면 고객이 기대하는 혜택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NFT가 일회성 마케팅이었다면, 이젠 이용자가 NFT를 계속 보유하고 있을 만한 혜택과 마케팅 전략을 잘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마케팅은 처음 고객을 끌어오는 것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NFT를 통해선 적은 비용으로도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데, 절감한 비용을 감안했을 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 “배타적인 혜택이 보장됐을 때 NFT가 시장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NFT를 기념품 정도로 갖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동아닷컴 IT전문 정연호 기자 (hoh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