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러더라고. 다르게 살려면 만나는 사람을 바꾸든가 이사를 하라고. 그 말이 영향을 많이 끼쳤지. 이제 제주도에서 보자고.” 안웅철 사진가가 지인들과 함께 마련한 송별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나이가 60세에 가깝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젊어 보이는 그는 “60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아봤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 하고 쿨하게 말했다. 떠난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가늠이 되면서도 미련도, 집착도 없이 훌훌 떠날 수 있다는 것이 후련하고 가뿐해 보여 좋았다. 며칠 후 이사는 잘하셨느냐고 전화를 했을 때 그는 다이소에서 빨래집게를 사고 있었다. 점심으로는 오메기떡을 먹고. “제주니까 오메기떡”이라는 말에 그의 이주가 실감났다.
자발적으로, 더 큰 집으로, 꿈꾸던 집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이사를 소풍처럼 들뜨며 치를 순 없다. 안웅철 사진가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 며칠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제주로 간다고, 좋으시겠다고, 생각 없이 박수를 쳤던 모습이 철없게 느껴지면서도 설레는 것이 없다면 제주도행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 같아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당분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일을 할 거라면서 “제주 곶자왈을 8년째 찍고 있는데 10년을 꼭 채우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계실 거냐는 물음에는 “일단 2년, 좋으면 영영.”
당장의 삶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아득할 수 있겠지만 그의 제주행이 나는 무의미하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적어도 영혼은 살릴 것 같다. 안개 낀 이른 아침이나 비 내린 오후,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어둠이 내린 저녁 카메라를 들고 곶자왈을 가면 일단 영혼이 좋아할 것 같은데 그렇게 영혼이 살아나면 삶은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흘러갈 거라 믿는다. 며칠 전 허브 요리 전문가 박현신 선생이 한 말이 있다. “식물도 2∼3년이 지나면 한 번씩 옮겨줘야 해요. 그래야 더 건강하게 잘 살아요. 한자리에 둬야 쭉 잘 자랄 것 같죠? 아니에요. 같은 자리에만 있으면 어느 순간 죽어 없어져 버려요. 그 땅의 기운이 다한 거예요.” 사람도 그렇지 않나? 이곳저곳, 이런 환경, 저런 환경, 이런 변화, 저런 변화 두루 경험해 본 사람이 좀 더 내공 있게 잘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