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읽기가 어렵다구요? 국제부 기자 어깨너머에서 외신을 본 경력만 3년. 광복이가 놓치기 아쉬운 훌륭한 외신만 엄선해 전해드릴게요. 바쁜 일상 속 짬을 내 [광복이 외신클럽]을 완독해내신 당신을 위해 매 회 귀염뽀짝한 동아일보 인턴기자 광복이의 일상도 함께 공개합니다!
※‘광복이’는 생생한 글로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등장하는 국제부 임보미 기자의 반려견(부캐)입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18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초등학생 19명, 성인 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된 학생들은 모두 4학년, 같은 반 친구들이었습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총기난사 소식을 전한 뉴스에 ‘미국 최악의 예외주의는 빈번한 총기사건’(The spate of gun violence shows American exceptionalism at its worst)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부제는 조금 더 냉소적입니다.
텍사스와 미국 전역이 또 다시 눈물 흘리고 있지만 행동에 나설 자가 있을까?(Texas and the country are sweeping, again. But will anyone act?)
이번 총기난사 사건의 용의자는 18번째 생일을 기념해 소총 2자루를 샀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자신의 집에서 할머니를 먼저 총으로 쏜 뒤 범행을 위해 학교로 차를 몰았습니다. 범행의 전개가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10년 전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너무 비슷합니다.
2012년 코네티컷 샌디훅에서도 20세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먼저 총으로 쏜 뒤 초등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1학년생 20명을 포함해 28명이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할머니로, 1학년이 4학년으로 바뀌었을 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비슷합니다. 10년 전까지 갈 것도 없이 불과 2주 전에도 뉴욕주 버팔로 한 슈퍼에서 18세 남성이 10명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영화 ‘그라운드호그 데이’ 포스터
○미국의 총기 예외주의
이코노미스트는 총기에 있어 미국이 극히 예외적이 국가인 점을 강조합니다. 우선 압도적으로 높은 총기 소지율입니다. 스위스 국제연구대학원 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인구 100명당 소지한 총기 수가 120.5개입니다. 내전으로 시름하는 예맨(2위·52.8개)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양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호주와 뉴질랜드는 비슷한 총기난사 사고가 벌어진 뒤 총기 규제 법안을 강화시켰지만 미국만큼은 관련 규제법에 변화를 거부해왔다고 지적합니다. 10년 전 샌디훅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현 대통령이자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에게 총기규제 법안의 개혁을 맡겼습니다. 바이든은 2013년 모든 총기 구매에 신원조회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했지만 이 법안은 전미총기협회(NRA)가 강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상원의 벽에 번번이 막혔습니다.
바이든은 입법부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온라인에서 총기 부품을 각각 구매 후 조립해 일명 ‘유령총’을 만들지 못하도록 정책을 손보려 했습니다. 참사가 일어났던 주들에서도 주 차원의 총기규제 법안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연방 차원의 강력한 규제가 없는 한계는 뚜렷했습니다.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주에서는 허가받을 필요 없이 총기를 소지하고 다닐 수 있도록 허락하는 주법을 통과시키고 나선 겁니다.
○미국은 원래 총이 많은 나라라 그렇다고? 웃기지마…NYT의 팩트폭행
미국에서 총기난사사고는 워낙 자주 나왔던 뉴스라 사실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이번 난사사건이 발생한 뒤 뉴욕타임스(NYT)는 2017년 당시 텍사스 한 교회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이후 신문에 실렸던 기고문을 친히 다시 소개했습니다. 제목은 ‘총기사고를 어떻게 줄일까(how to reduce shootings)’입니다. 5년 전 글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 소개하기 적절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기고문은 ‘미국은 총기사용에 있어서 예외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을 수치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Q&A 형식으로 간략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Q1.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총이 많으니까 총기 사고도 많은 거 아니야?
A. 응. 아니야. 총이 많은 것도 맞지만 총기사고는 더 많거든. 미국은 인구 100명당 보유 총기 수가 120.5개로 압도적 1위야. 선진국 중에서는 캐나다가 그 다음(34.7개)이거든? 단순히 총이 많아서 사고가 많이 나는 거면 미국이 캐나다보다 총기를 3.5배 정도 많이 보유하고 있으니까 총기사고도 3.5배 정도가 돼야 하잖아? 그런데 인구 10만 명당 총기사고로 사망한 사람 수는 미국이 3.4명으로 캐나다(0.6)보다 5.6배나 높아.
Q2. 총기사고보다 차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잖아? 그렇다고 차를 금지할래?
A. 물론 금지 안하지. 대신 ‘규제’하지. 1950년부터 교통안전규제가 계속 강화됐고 덕분에 자동차 주행거리 1억 마일당 차사고 사망자 수는 1946년 9명에서 2021년 1.33명으로 약 7분의 1로 급감했어.
<미국 주요 자동차 규제>
1950년 미국산 차 안전벨트 도입
1968년 연방 자동차 표준 안전기준 도입
1974년 전국 속도 제한 도입(시속 88km)
1978년 테네시주 어린이 안전벨트 의무규정 도입
1993년 자동차 안전 등급제 도입
1999년 에어백 의무화
2000년 자동차 제조사 결함 의무보고
Q3. 총기 규제를 강화한다고 총기사고 사망자가 줄 것 같아?
A. 총으로 막는 죽음보다 총으로 생기는 죽음이 더 많아. 총기 보유수준이 평균 이상인 주가 총기관련 사망자 수가 더 높은 경향이 뚜렷해. 자살이든 타살이든 이단 총이 있으면 사람이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져.
Q4. 총기난사 때문에 죽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난사하려고 마음먹은 놈이 막는다고 막아져? 자살하는 사람은 또 어떻게 막을 건데?
A. 물론 총기난사를 작정한 놈을 완전히 막기란 불가능하지. 실제로 총기관련 사망은 난사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는 친구, 가족의 총에 맞아 죽는 경우가 훨씬 많아. 다만 총기난사 사건 때마다 경각심이 생겨서 규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있어. 주별로 비교해보면 총기규제가 강할수록 총기 관련 사망 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뚜렷해.
○사람들 마음 찢어놓는 총기사고에도 의원님들의 마음은 확고부동
이번에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한 텍사스 주는 이미 2019년 한 해에만 두 차례 연달아 총기난사 사고를 겪었습니다. 당시 그레그 애보트 주지사는 향후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해결책을 찾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애보트 주지사는 오히려 허가 없이도 총기를 소지하고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25일(현지시간) 이번에도 애보트 주지사는 총기사고가 난 뒤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다가오는 중간선거에서 텍사스 민주당 주지사 후보로 선출된 베토 오루크는 회견 도중 애보트 주지사의 말을 가로챈 뒤 “주지사님은 이번 사고가 예측 불가능했다고 말하셨지만 이건 완전히 예측 가능했습니다. 당신이 다른 선택을 할 때까지 이번 사태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이런 사고는 계속 벌어질 것입니다. 누군가 아이들을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아이들은 어제처럼 계속 죽어나갈 것입니다”라고 일침했습니다.
하지만 애보트는 주지사 여론조사에서 한번도 오루크 후보에게 뒤진 적이 없습니다. 설령 오루크 후보가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당선된다 한들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주 의회에서 그가 총기규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합니다.
오늘(27일), 미국에서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텍사스 휴스턴에서는 NRA의 최대행사인 연례총회가 열립니다. 이 행사에는 애보트 주지사는 물론 테드 크루즈 텍사스 상원의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해 연사로 나설 예정입니다.
NRA는 24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7일 오후 2시에 연례총회에서 연설을 한다고 홍보하면서 “나는 NRA와 수정헌법2조(무기 소지의 자유)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 영상을 함께 첨부했습니다.
텍사스에서 총기난사사고로 초등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지 72시간 만에, 같은 텍사스에서 총기 규제를 완화시키려고 로비를 하는 단체의 성대한 행사가 열리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총기난사 피해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던 정치인들은 이제 총기 소지를 옹호하는 연설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기사를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깊은 분노가 느껴집니다.
That the Uvalde atrocity and the nra‘s gathering will occur in the same state, in the same week, is a symbol of America’s divisions and dysfunction.
유밸디에서 벌어진 참사와 전미총기협회(NRA)의 행사는 같은 주(state)에서, 같은 주(week)에 열린다. 이는 미국이 얼마나 분열돼있고 고장 나있는 지를 보여준다.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난사사건 발생 당일(미국시간 24일·한국시간 25일) 초등학생들이 무차별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는 비극을 듣고 앓아누운 광복이. 외출할 때면 늘 후원하고 있는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와펜을 달고 다니는 광복이는 이 세상 모든 어린이를 사랑한답니다. 이번만큼은 부디 어린이, 교사의 희생이 덧없지 않길 바랍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