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력 일본과 대등한 반열 올라섰지만 내심 뒤처진다 생각해 약점 찾는 건 아닌지 과거 딛고 있는 그대로 일본 바라봐야 한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올해 1월 일본 경상수지가 1조20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은 상품수지와 본원소득수지다. 상품수지는 상품의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많으면 흑자가 된다. 한 나라의 본원소득수지는 그 나라 국민이 해외에서 받은 임금과 투자소득에서 외국인이 그 나라에서 받은 임금과 투자소득을 차감한 값이다. 일본은 수출 강국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상품수지가 적자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상품수지가 적자였다. 그러나 그 5년 동안도 경상수지는 흑자였는데 본원소득수지 흑자가 상품수지 적자보다 컸기 때문이다. 월별 데이터에서는 경상수지도 적자일 때가 가끔 있다. 그런데, 올해 1월의 경상수지 적자가 특별히 뉴스가 된 것은 2014년 1월 이후 가장 큰 적자액이었기 때문이다. 상품수지 적자 2조4000억 엔이 본원소득수지 흑자 1조2000억 엔을 압도했다.
이 소식은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서 메인 뉴스가 됐고, 쇠락하는 일본 경제의 단편으로 읽혔다. 그러나 2∼3월에는 상품수지 적자가 급감하고 본원소득수지 흑자가 급증해서 경상수지가 각각 1조6000억 엔과 2조5000억 엔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 뉴스는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 실리지 않았다. 아직도 한국 지인들로부터 일본의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런 편향성은 한국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매체도 한국 경제에 관한 부정적인 보도가 뉴스 소비자의 이목을 끈다는 것을 안다. 한국에 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일본인이라면 한국의 가계부채가 일본의 정부부채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것과 청년실업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친환경, 우주, 로봇 등으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일본인은 별로 없다.
일본의 패전 이후에도 일본은 늘 한국보다 더 잘사는 나라였다. 내가 일본에 처음 간 것은 버블이 꺼지고 10년 가까이 지난 때였는데도 한국에서는 서울 강남에서나 볼 수 있던 고급 외제차가 일본은 지방의 작은 마을에도 드물지 않았다. 도쿄 긴자에 갔을 때는 고급 외제차가 줄줄이 서 있어서 신기했던 기억도 난다. 시부야 거리에 명품 매장이 늘어서 있어서 놀랐고, 백화점 제과 코너의 물건들이 지나치게 고급스럽게 포장돼 있어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서울이 도쿄보다 더 호화롭게 보인다. 한국에서도 어디를 가나 고급 외제차가 즐비하다. 벤츠가 한국에서 하도 잘 팔려 일본 벤츠 임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도 들었다. 어느새 한국은 일본만큼 잘사는 나라가 됐다.
한국은 일본보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경제력은 작지만 1인당 소득은 일본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이 조금 높고, 명목으로 하면 일본이 조금 높다. 유럽의 독일과 네덜란드가 다 같은 선진국으로 굳이 누가 더 잘사는지 따지지 않듯이, 한국과 일본도 이제 그런 관계가 됐다.
그러나 그런 관계의 변화가 한국인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아직 익숙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이제 한국도 선진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구석에는 뭔가 여전히 일본보다 못한 면이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한국인들은 이제 일본을 따라잡았다 여기면서도 그래도 아직 한국이 일본보다 아랫자리에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더 일본이 쇠락하고 있다는 뉴스, 이제는 한국이 더 낫다는 뉴스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