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지방선거 앞두고 달아오른 자서전 대필시장
《6·1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필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출판기념회용 자서전 집필뿐 아니라 유튜브에 올릴 홍보 글을 위해 대필 작가를 찾는 정치인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짜깁기 집필 의뢰, 원고료 떼먹기가 빈번한 대필 세계를 들여다봤다.》
자서전 대필 시장, 선거 앞 후끈
“요즘 사람들 자서전은 안 읽어도 유튜브는 보지 않나요. 유튜브 출연용 대본도 써줄 수 있습니까?”
최근 한 대필 작가는 올해 6·1지방선거에 구청장 후보로 출마하는 A 씨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 앞서 그는 A 씨가 과거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때 자서전을 써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선거에 앞서 출연하는 유튜브에서 읽을 소개 글을 대신 써달라고 의뢰한 것. 그는 “대본 집필은 과거 자서전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A 씨의 인생 궤적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사흘 만에 유튜브 대본을 써주고 10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 눈길 끄는 글 찾아라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대필 작가들을 찾는 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이력을 간결하게 정리해줄 보좌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비서관을 거느린 유력 정치인이나 홍보팀의 도움을 받는 전문 경영인과 다른 상황에 처한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수요가 빚은 현상”이라고 설명했다.출마 경험이 있는 후보자들은 기존 자서전을 써준 작가에게 유튜브 대본 대필을 요청한다. 후보자 이력이나 삶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기에 대본 집필에 일주일도 걸리지 않는다. 금액은 1회당 100만∼200만 원. 정치에 처음 발을 들인 후보자들은 유튜브 대본과 자서전 집필을 동시에 의뢰한다. 이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다른 대필 작가는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유튜브를 주된 홍보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서전을 함께 내놓으려는 수요가 많다. 자서전이 있어야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속성 짜깁기 집필 의뢰에 한숨만
올해 지방선거에 구청장 후보로 출마하는 B 씨는 2월쯤 대필 작가에게 급히 자서전 출간을 부탁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90일 전(올해의 경우 3월 3일)부터 출판기념회가 금지되는 데 따른 것. 그 전에 출판기념회를 열어야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마음만 먹으면 보름이 아니라 일주일 안에라도 짜깁기해서 책을 만들 수 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모금에 쓰려고 자기 삶을 담은 자서전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쓰려는 모습을 보고 한숨이 나와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쏟아진 후보자 자서전 상당수가 대필 작가가 쓰거나 윤문을 해준 것들로 보고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출판기념회를 의식해 지방선거일 90일 전 책을 내려고 작가를 급히 찾는 후보자들이 많다. 짧은 시간에 책을 만들다 보니 만듦새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후보자 자서전의 경우 섣불리 냈다가 내용이 문제가 돼 역풍을 맞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 후보자 자서전은 그럴 위험이 낮아 완성도도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작가들은 정치인의 이런 초고를 완결성 있게 바꾸는 일을 한다. 시간 순서에 따라 이력을 정리하고, 지방선거 특색에 맞게 출마 지역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담긴 에피소드를 적당히 추가한다. 선거 공약과 맞닿아 있는 후보자의 철학을 담는 건 기본. 경력 20년차 대필 작가는 “후보자의 ‘뻥튀기’를 없애는 게 대필의 주된 업무다. 간결한 자서전일수록 후보자는 불만족하고, 주변 사람들은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저자명 감추다 보니 ‘원고료 떼먹기’ 빈번
올해 시장 선거에 나서는 C 씨는 지난해 12월 자서전 대필을 의뢰했다. 출마 사실을 숨긴 채 “공무원으로 오래 일한 뒤 은퇴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내 인생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고만 했다. 작가는 600만 원에 자서전을 써줬다. 얼마 뒤 C 씨는 이 책으로 출판기념회를 열고 6·1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작가는 “일부 후보들은 자서전 집필 비용을 낮추기 위해 출마 사실을 일부러 숨긴다”고 했다.책을 출간했지만 대필 비용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필이 알음알음 소개로 이뤄지고 책에 공저자로 명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낙선 후 대필 비용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들도 여럿 생기고 있다. 여러 작가들이 함께 자서전 집필에 참여하기도 한다. 위드에스마케팅은 작가들이 함께 목차를 기획하고 인터뷰한 뒤 원고를 쓴다. 향후 법적 분쟁을 막기 위해 출판 계약서는 세세히 쓴다. ‘목차 기획, 전화 및 대면 인터뷰를 거쳐 200쪽의 자서전을 만든다’는 문구를 계약서에 명시하는 식이다. 대필 및 인쇄 금액도 표준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후보자에게 자료를 받아 책을 쓰면 600만 원, 작가가 후보자 인터뷰와 자료 찾기까지 병행하면 900만 원을 받는다.
해외에서는 정치인이 자서전을 출간할 때 대필 작가를 공저자로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임재균 한국대필작가협회장은 “일부 대필 작가들은 자서전 출간 후 1년이 지나도록 원고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필 작가를 공동저자로 명시하고 계약서를 항목별로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