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칼/정보라 지음/312쪽·1만4800원·아작
이호재 기자
19일 오전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의 정보라 작가(46)에게 메시지가 왔다. 26일(현지 시간) 영국에서 열리는 부커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다는 안부 인사였다. 그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문학 열심히 홍보하고 오겠습니다.”
‘저주토끼’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은 불발됐지만 최종 후보에 오른 후 정보라의 작품세계는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평가받았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그의 삶이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에 한국문학의 영향이 적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중고등학생 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을 탐독하며 자랐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작가는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인 고 박완서(1931∼2011)다. 정보라는 박완서의 작품을 읽으며 섬세한 감정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공교롭게도 올해 ‘저주토끼’와 함께 부커상 1차 후보에 오른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의 박상영 작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도 박완서다. 박완서의 작품을 읽고 자란 한국 작가들이 연달아 영국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저주토끼’가 유명해지면서 이 책 역시 영국에서 출간될 계획이다. 이번에도 번역은 ‘저주토끼’의 허정범(안톤 허·41) 번역가의 손을 거친다. 조선인의 마음이 담긴 SF 장편소설에 대한 해외 독자들의 평가는 어떨지 궁금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