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여자가 될 때/메리 파이퍼 등 지음·안진희 옮김/576쪽·1만9500원·문학동네
게티이미지코리아
10대 소녀 미란다는 폭식증을 앓고 있다. 그는 가족이 문제라고 느낀다. 아버지는 물리치료사, 어머니는 사서로 쉴 틈 없이 일하느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시간이 없다. 부모는 맞벌이를 하지만 대출이자를 갚느라 늘 허덕인다. 미란다는 비싼 학비를 들여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이 불투명하다는 걸 안다. 혹여 우리 집이 가난해질까, 내 미래가 없으면 어쩌나 불안하지만 부모에게조차 마음을 터놓을 수 없다. 도대체 이 가족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고 누구의 잘못일까.
미국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미란다 가족에게 병명을 붙이기보다 그들이 서로에게 닿으려 애쓴 노력을 들여다보라고 제안한다. 그의 부모는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아니고 딸을 학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집에서 차로 8시간 떨어진 저자의 심리치료센터에 딸을 보내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어쩌면 부모는 일에 치여 딸에게 충분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딸을 지켜내려고 했다. “우리 부모는 불합리하다”고 여겼던 미란다는 저자와의 상담을 통해 안정을 되찾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거나 훗날 취업을 못 하더라도 언제나 내 편인 부모의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1994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미국에서 ‘10대 자녀를 이해하는 바이블’로 꼽힌다. 저자는 2019년 출간 25주년을 기념해 개정증보판을 내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 등 요즘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를 추가했다. 아동 교육잡지 ‘익스체인지’ 편집장인 저자의 딸도 집필에 참여해 각각 1960년대와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자신의 경험은 물론이고 이들이 최근 만난 청소년들의 고민도 담았다.
저자 메리 파이퍼가 미국 네브래스카주 국회의사당 원형홀에서 강연하고 있다. 그가 1994년 미국에서 출간한 ‘내 딸이 여자가 될 때’는 154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임상심리학자인 그는 환경오염, 빈부격차에도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딸을 둔 부모를 대상으로 썼지만 유년시절 아픈 상처를 지닌 이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사랑하고 신뢰할 만한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할 힘을 지녔다”는 저자의 조언은 다소 진부하게 여겨지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치유법이다. 어쩌면 가족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북극성이 아닐까.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