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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딸에게 말해주세요 언제나 네 편이라고

입력 | 2022-05-28 03:00:00

◇내 딸이 여자가 될 때/메리 파이퍼 등 지음·안진희 옮김/576쪽·1만9500원·문학동네



게티이미지코리아


10대 소녀 미란다는 폭식증을 앓고 있다. 그는 가족이 문제라고 느낀다. 아버지는 물리치료사, 어머니는 사서로 쉴 틈 없이 일하느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시간이 없다. 부모는 맞벌이를 하지만 대출이자를 갚느라 늘 허덕인다. 미란다는 비싼 학비를 들여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이 불투명하다는 걸 안다. 혹여 우리 집이 가난해질까, 내 미래가 없으면 어쩌나 불안하지만 부모에게조차 마음을 터놓을 수 없다. 도대체 이 가족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고 누구의 잘못일까.

미국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미란다 가족에게 병명을 붙이기보다 그들이 서로에게 닿으려 애쓴 노력을 들여다보라고 제안한다. 그의 부모는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아니고 딸을 학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집에서 차로 8시간 떨어진 저자의 심리치료센터에 딸을 보내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어쩌면 부모는 일에 치여 딸에게 충분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딸을 지켜내려고 했다. “우리 부모는 불합리하다”고 여겼던 미란다는 저자와의 상담을 통해 안정을 되찾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거나 훗날 취업을 못 하더라도 언제나 내 편인 부모의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1994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미국에서 ‘10대 자녀를 이해하는 바이블’로 꼽힌다. 저자는 2019년 출간 25주년을 기념해 개정증보판을 내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 등 요즘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를 추가했다. 아동 교육잡지 ‘익스체인지’ 편집장인 저자의 딸도 집필에 참여해 각각 1960년대와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자신의 경험은 물론이고 이들이 최근 만난 청소년들의 고민도 담았다.

196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저자는 자신의 세대는 ‘자신감’이 있고, 딸이 속한 1990년대 소녀들은 ‘반항적’이라고 표현한 반면 요즘 10대는 ‘조심스럽다’고 분석한다. 반백 년 동안 가장 크게 바뀐 건 경제 여건. 맞벌이 부모가 발버둥쳐도 거액의 빚을 지고, 취업 길은 막막하다. 아동과 청소년 인권이 강조되는 21세기에도 청소년들이 불안에 시달리는 이유다. 이에 더해 SNS는 자녀를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고립시켰다.

저자 메리 파이퍼가 미국 네브래스카주 국회의사당 원형홀에서 강연하고 있다. 그가 1994년 미국에서 출간한 ‘내 딸이 여자가 될 때’는 154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임상심리학자인 그는 환경오염, 빈부격차에도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저자는 자신을 찾아온 청소년들에게 “북극성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풍랑이 치는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중심점을 찾으라는 것이다. 일례로 저자가 만난 27세 여성 준에게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북극성이었다. 준은 남들보다 뚱뚱하다는 이유로 학창시절 내내 따돌림을 당하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아낌없이 사랑해준 어머니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은 덕에 자신과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준은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다.

딸을 둔 부모를 대상으로 썼지만 유년시절 아픈 상처를 지닌 이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사랑하고 신뢰할 만한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할 힘을 지녔다”는 저자의 조언은 다소 진부하게 여겨지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치유법이다. 어쩌면 가족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북극성이 아닐까.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