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2016)’는 상처와 기억에 대한 영화입니다. 강렬한 은유의 이미지로 상처와 기억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설정된 가해자는 수전(에이미 애덤스)이고 피해자는 옛 연인 에드(제이크 질렌할)입니다. 정확히는, 에드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는 설정입니다. 실제로 수전은 옛날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수전이 누워서 에드의 습작 소설을 읽던 빨간 소파는 영화 속 영화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의 배경으로 변용됩니다. 수전이 습작을 읽은 뒤 빨간 소파에서 앉아 “첫 페이지부터 읽어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며 냉정하게 평가했거든요. 작가가 꿈인 에드의 마음엔 연인의 비난이 거대한 트라우마 불도장으로 찍힙니다. 시신이 등장한 미장센은, 언어폭력이 인격살인이라는 상징입니다. 피와 상처를 상징하듯 빨간색으로.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피해자는 상처 받던 상황 하나하나를 초단위로 깨알같이 기억합니다.
▽말로 상처받은 피해자는 트라우마가 뼈에 사무치는데 정작 가해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곤 합니다. 심지어 상처 받은 건 오히려 자신이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가해자는 왜 기억하지 못할까요. 비수가 된 말들이 사실은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이었기 때문 아닐까요. 오히려 도와주려는 선의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직언, 쓴소리를 해줬다고 뿌듯해 할 수도 있습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추궁하면 “장난이었다, 친해지려 그랬다”라고 변명합니다. 진심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장난이었을 수도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건 미처 생각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미술관장인 수전은 회사 복도에 걸린 작품 ‘Revenge(복수)’를 보면서도 자신의 결정으로 구입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복수가 전개된다는 것과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전제를 은유의 방법으로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또 복수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변신시키는 것이니까요. 가해와 피해는 언제라도 역전될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아파트의 8층에는 다섯 명의 대학생이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가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들과 마주치는데, 그들이 각각 혼자 있을 때 이렇게 물어보았다. ”화장실 쓰레기를 얼마나 자주 내다 버립니까?“ 그러면 ”두 번에 한 번씩“이라고 대답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세 번에 한 번씩“이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또 한 학생은 터진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다가 화를 내며 말했다. ”굳이 말하자면 언제나 저에요. 90%요.“ 그들의 대답을 모두 합치면 100%가 되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모두 합쳐 무려 320%에 이른다! 그런 식으로 공동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시스템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과대평가한다. 결혼에 있어서도 그와 똑같은 메터니즘이 작용한다. 학문적으로 증명된 바에 의하면, 남자나 여자나 모두 원만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데 각자 자신들의 기여도가 50%를 넘는다고 평가한다…” / 심리학자 롤프 도벨리의 책 ‘스마트한 생각들’에서
상처는 기억과 맞닿아 있지만, 기억은 언제든지 편의적으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기억하니까요. 여기에 자기 연민까지 더해지면 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되죠. 결국 가해자는 아무도 없고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만이 연출됩니다. 타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비난해도 정작 본인은 ‘내가 진짜 피해자’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큽니다.
가해는 반복되고 상처 복제되고 기억은 왜곡되기 일쑤입니다. 결국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서 일은 더 커집니다.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한발 떨어져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상황을 돌아보는 냉정한 시각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울러 오늘도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도 경계해야 하고요.
영화에서 에드의 복수는 이뤄졌을까요? 스포일러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성공합니다. 매우 소심한 방법으로요.
금이 간 상처를 좋은 접착제로 붙인다 해도 흔적은 남습니다. 2021년 7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