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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무효’ 나도? 우리 회사 어떻게?…소송 문의 들썩

입력 | 2022-05-29 13:01:00


대법원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 위반에 해당해 무효라는 첫 판단이 나오면서 법조계 등에서는 후속대응을 위한 움직임에 바빠지는 모습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 이후 기업·노동자 양측의 관련 문의가 로펌 등 변호사 업계에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26일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이전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던 A씨가 옛 전자부품연구원(현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에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고령자고용법이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 판단을 근거로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목적의 타당성 ▲적용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삭감에 대한 다른 조치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줄어든 돈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판결 이후 유사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의 소송·법률자문 문의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소속 정병욱 변호사는 “채권시효가 아직 소멸되지 않은 노동자들로부터 ‘소송을 다시 하면 안되겠느냐’는 연락이 많이 오고 있다”며 “퇴직금을 다시 산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만큼 임금소송뿐만 아니라 퇴직금 산정 소송도 많아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도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면서 임금이 삭감된 이들은 퇴사를 앞둔 이들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라며 “앞으로 관련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다만,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이 까다로워 개별 사업장·사안에 따라 판단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판사 출신인 A 변호사는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경위가 어땠는지, 임금 줄이는 대신 일을 얼만큼 줄여줘야 적법하다는 것인지 등 주관적 평가나 가치평가가 필요한 불확실한 부분들이 있어서 변호사들로서도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에서 임금피크제 관련 첫 판단을 내놓은 만큼 소멸시효 기산점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법상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려면 피해사실을 안 날, 즉 소멸시효 기산점으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3년의 소멸시효 내에 소를 제기하기 않으면 청구권은 소멸된다.

정 변호사는 “소멸시효 기산점은 대법원 판결이 난 26일부터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약 이 의견처럼 소멸시효 기산점이 각 사의 임금피크제 도입 시점이 아닌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날로 바뀐다면 사실상 임금피크제로 임금이 삭감된 노동자들 모두가 사측을 상대로 청구권 행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기업들도 관련 법률 자문 등 대응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A 변호사는 “여러 회사들에서 문의가 쇄도하고 있고 기존에 진행되고 있던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들도 꽤 있다”며, “기업들의 법률 자문이나 소송 문의 등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로펌들에서 임금피크제 관련 대응 팀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소속된 로펌에서는 이미 전담팀이 구성돼 앞으로 바빠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한편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정년이 있는 300인 이상의 사업체 중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54.1%에 달한다. 업종별로는 금융·보험업, 도소매업, 제조업 순으로 많았다.

소송이 시작되면 법원은 ▲사용자가 임금피크제를 왜 도입하려 하고 당장 필요한지 ▲근로자의 소득 수준에 비춰봤을 때 임금 삭감의 폭이 어땠는지 ▲임금피크제의 시행을 전후로 근로자의 업무량에 변화가 있었는지 ▲절약한 인건비가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에 맞게 쓰였는지 등을 기준으로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