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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사각지대 놓인 ‘애완용 거미’ 거래, 방치했다간 생태계 파괴 우려

입력 | 2022-05-30 03:00:00

인터넷 알고리즘으로 현황 조사
전갈 포함 1200여 종 거래 확인… 거미류 67%가 야생에서 채집
규제 대상 지정된 종은 2% 불과, 서식지 벗어나면 환경에 악영향



국내외 애완용 거미 시장이 커지며 지난 20년간 온라인으로 거래된 거미, 전갈 등 거미류가 1200여 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거미류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거래규제 방침도 부실해 야생 거미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진은 대표적 애완용 거미 종인 타란툴라의 모습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거미류가 애호가들 사이에서 희귀 반려동물로 인기를 모으면서 인터넷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거래되는 거미류가 120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멸종위기종을 불법 거래하거나 허가 없이 해외로부터 밀반입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거미류 유통이 늘고 있지만 거미류에 대한 과학계의 연구가 부족하고, 규제 당국의 관심도 적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거래되는 거미 중 관리대상 종은 2%에 불과
홍콩대를 비롯해 중국, 영국, 태국, 핀란드 등 5개국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검색 알고리즘을 활용해 야생 희귀 거미류 포획과 온라인 매매에 관해 연구한 결과를 이달 19일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에 공개했다.

연구팀은 2000∼2021년 인터넷을 통해 거래된 거미류를 조사한 결과 66과 371속 1264종을 찾아냈다. 구글에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9개 언어로 ‘거미’ ‘전갈’ ‘거미류’ 등을 검색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인터넷 문서에서 거미류 검색이 용이하게 직접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수집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거미류 1264종 중 거미는 903종, 전갈은 350종, 채찍전갈로도 불리는 미갈류는 11종으로 나타났다.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조사할 경우 훨씬 더 다양한 거미가 거래되고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미국 야생동물관리국 및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서 공통적으로 관리대상으로 지정한 거미는 2%인 25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8%는 거래에 대한 별다른 규제 없이 방치돼 있다는 뜻이다. 앨리스 휴스 홍콩대 생물학과 교수는 “거미류가 인터넷 등을 통해 대규모로 유통되고 있지만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며 제도적 허점을 지적했다.

연구진은 거미가 크기가 작아 규제 당국의 감시를 피해 해외로 운송하기 쉬워 무분별하게 포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에서 조사된 거미류 중 67%는 사육된 것이 아니라 야생에서 채집한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속은 채집된 경우가 99%에 이르렀다. 휴스 교수는 “다수 거미류가 원래의 살던 서식지를 벗어나 해외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야생동물 밀거래는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거미, 지네 등 절지동물 3000여 마리를 불법 반입한 일당이 검거됐다.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중국, 아프리카 등에서 모두 80여 차례에 걸쳐 장난감, 장식품이라고 속이고 절지동물을 국내로 들여왔다.

연구팀은 “거미류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국경을 넘어 거래되는 것이 매우 우려된다”고 밝혔다. 국내 거미 전문가인 김승태 건국대 생명환경연구소 교수도 “애완 거미를 통해 거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일반인도 거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로서 국내 자생종을 키우는 건 긍정적이지만 국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는 생물을 인위적으로 유입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 과학계도 거미 보호엔 무관심, 생태계 파괴 우려도
연구진은 과학계와 규제 당국이 거미류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동물에 대해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멸종위기종을 분류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조차 무척추동물 100만 종 중 조사를 진행한 것은 1%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28%는 데이터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거미류 분류체계가 빈번하게 변경되고 비전문가들이 거미류를 식별하기 어려워해 거래를 관리하고 감시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거래를 위한 무분별한 채집으로 희귀종이 멸종되고 개체 수가 급감하는 등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일부 타란툴라 종이 인터넷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국제학술지 ‘지구생태및보존’에 공개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생물의 멸종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며 “개체가 점차 줄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그에 맞춰 점점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거미류 보호를 위해 불법 거래 현황에 대해 각국 규제 당국이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미 애호가들도 거미를 구매할 때 품종과 출처를 정확히 확인해 줄 것을 당부했다. 논문에 참여한 캐럴라인 후쿠시마 핀란드 헬싱키대 생물학과 교수는 “우리는 최종 소비자로서 동물의 보존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라고 했다.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i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