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정의나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전술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싸웠다. (살상에 대한) 자각조차 없었다.” 28일 20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일본적군파’ 간부 시게노부 후사코(76)가 당일 공개한 수기 내용이다. ‘적군파 여제’로 불렸던 시게노부의 반성에도 일본 신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마녀의 사죄문”이라고 썼다. 현재도 해외로 간 일본적군파 회원 7명은 국제 지명수배 중이다.
▷일본적군파는 1969년 발족해 1970년대에 활동한 일본의 좌파 테러단체다.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안보투쟁’을 계기로 일본 대학가에는 학생운동 열풍이 몰아쳤다. 1968년 도쿄대 야스다강당이 불타는 점거 투쟁 이후 학생들이 외면하자 기존 체제를 파괴하려는 폭력제일주의 파벌이 부상했다. 적군파 9명은 1970년 승객 등 129명을 태우고 도쿄를 출발해 후쿠오카로 가던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해 세계에 알려졌다. 도중에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속여 승객들을 구출했지만 이들은 대신 인질로 잡힌 일본 운수성 차관을 태우고 평양으로 망명했다. 현재 4명이 살아남아 평양에 살고 있다고 한다.
▷당시 북한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적군파는 새로운 혁명 거점으로 중동을 선택했다. 1971년 적군파 중앙위원 겸 조직부국장이던 시게노부 등 19명이 레바논으로 날아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산하 무장단체와 연대했다. 텔아비브공항 습격 사건부터 헤이그 프랑스대사관 습격 사건, 말레이시아 미대사관 습격 사건 등 1970년대 국제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테러를 배후 조종했다.
▷시게노부는 2000년 검거된 지 몇 달 만에 ‘사과나무 밑에서 너를 낳으려 결심했다’는 옥중수기를 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회원과의 사이에 낳은 딸에게 일본 국적을 얻어주려 쓴 탄원서를 모은 것이었다. 석방 당일에도 딸의 부축을 받으며 출소했다. 시게노부는 출소하면서 기자들에게 “50년 전에 인질극을 벌이는 등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며 사죄했다. 젊은 날 이념의 광기에 사로잡혔던 한 여성의 씁쓸한 참회록이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