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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재명]안녕 ‘코로나 라이브’, 그 유산만은 남아 있길

입력 | 2022-05-30 03:00:00

박재명 정책사회부 차장


살다보면 그냥 지나친 날이었는데 뒤돌아보니 중요한 날들이 있다. 별생각 없었던 사소한 식사가 사랑하던 이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걸 뒤늦게 깨닫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평범한 날에 불현듯 자신을 평생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졌단 걸 나중에 알게 되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선 올 5월 16일이 그런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날’ 중 하나일 것이다. 국민들에게 코로나19 통계를 알려 주던 ‘코로나 라이브(corona-live.com)’가 2020년 8월 개설 이후 21개월 만인 그날 문을 닫았다.

코로나 라이브는 코로나19 환자 수를 실시간으로 보여 주는 사이트다. 2020년 8월 당시 처음으로 하루 수백 명씩 코로나19 환자가 나오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여전히 하루가 지난 뒤에 전날 환자를 확정 발표하는 방식만 고수했다. 코로나 라이브가 각 시도 집계를 바탕으로 실시간 확진자를 보여 주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질병청 발표가 아닌 코로나 라이브 수치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부 사이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디자인과 시인성도 코로나 라이브의 인기 요소였다. 확진자, 사망자 수치를 한 주 전, 한 달 전과 비교하기도 간편했다. 사람들은 코로나 라이브를 통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게 2년간 지속됐다. 누적 조회 수는 8억2008만 건을 넘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은 이 사이트는 22세 대학생 홍준서 씨가 만들었다. 처음 개설하던 2020년엔 스무 살 청년이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정보 수집부터 사이트 보수까지 모든 것을 혼자 했다. 광고도 마다하고 사람들에게서 소액 후원금만 받아 운영했다.

코로나 라이브는 운영 종료 후 어떻게 될까. 홍 씨는 “10년, 20년 뒤 추억이 될 것 같아 접속만 가능하도록 놔둘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 코로나 라이브 운영 노하우를 물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엔 “그런 전화는 없었다. 광고를 얹자는 마케팅 제휴 연락만 많이 왔다”고 전했다.

최근 방역당국 발표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표현 중 하나가 ‘코로나19를 참고해서’다. 100% 다시 시작될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해 코로나19 유행 당시 효과가 있었던 것들을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받은 코로나 라이브의 실시간 확진자 집계 방식도 계승될까. 방역당국의 입장은 “불확실한 정보로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부정적이다. 이르면 6월 말 코로나19 재유행을 발표한 게 질병청이다. 그때가 되면 또다시 나타날 ‘제2의 코로나 라이브’에만 의존할 건가.

다행히 홍 씨는 개발자 공유 사이트인 ‘깃허브’에 코로나 라이브 소스코드를 공개해 뒀다.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정부가 아니더라도 코로나 라이브가 만든 감염병 집계의 ‘유산’을 남길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재기발랄한 청년은 사람들이 운영비에 보태 쓰라고 보낸 돈 중 남은 4136만901원을 끝전 하나까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코로나 라이브 명의로 기부했다. 괴롭고 긴 터널이었던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긴 미담 중 하나일 것이다.


박재명 정책사회부 차장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