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송강호 칸 영화제 동시 수상]
‘헤어질 결심’으로 칸영화제 감독상
28일(현지 시간)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감독상 수상자로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이 호명되자, 박 감독은 ‘수상 베테랑’답게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시상자로 나선 덴마크 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그와 포옹한 뒤 영어로 비속어를 섞어가며 “정말 너무 멋지다”라고 말했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 감독은 2004년에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2009년엔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아 ‘깐느 박’이란 별명을 얻었다. 칸영화제에 초청된 건 이번이 네 번째로 홍상수 감독과 함께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가장 많이 초청된 한국감독이 됐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와 영화관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소감을 말하자 눈물을 훔치는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칸영화제 홈페이지
박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팬데믹을 버텨낸 영화인들을 위로하고 영화관과 영화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인류가 국경을 높이 올린 때도 있었지만 또 단일한 공포와 근심을 공유하게 됐다”며 “영화관이라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이 질병을 이겨낼 희망을 가진 것처럼 영화인들도 영화관을 지키면서 영화를 영원히 지켜 내리라 믿는다”고 했다. 객석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울컥한 표정의 배우들과 감독들이 객석 곳곳에 보였다. 한국영화 ‘브로커’를 연출한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손수건으로 보이는 것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도 포착됐다.
28일(현지 시간)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배우 송강호가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박찬욱 감독이 객석에서 달려나와 얼싸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배우 박해일(왼쪽)이 벅찬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고 ‘브로커’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오른쪽)도 활짝 웃으며 축하하고 있다.
그는 폐막식 직후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와 함께 한국 기자들과 만나 ‘영화관의 소중함’에 대해 강조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영화관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오랜만에 가서 영화를 보니 영화라는 것에 소명의식이 생길 정도로 놀랍더라. 그래서 ‘헤어질 결심’은 영화가 영화일 수 있는 기본에 깊이 들어가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남편을 사별한 서래(탕웨이·오른쪽)가 자신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을 응시하고 있다. CJ ENM 제공
‘헤어질 결심’은 그의 전작들과 달리 폭력이나 수위 높은 정사 장면이 없다. 강력계 형사 해준(박해일)이 남편 사망 사건 용의자로 서래(탕웨이)를 수사하게 되면서 서로에게 느끼는 관심과 미묘한 감정을 다룬 영화는 대사 같은 직접적인 표현보단 표정의 미세한 변화와 작은 행동, 음악, 미장센으로 감정이 드러나게 하는 데 천착한다. 그가 에세이집 등을 통해 밝혔듯 ‘최소 표현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는 원칙을 적용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요소는 걷어내며 박찬욱표 영화의 기본으로 돌아간 셈이다.
그는 수상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데뷔작을 내놓은 지 30년이 됐더라. 축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의 데뷔작은 가수 이승철 주연의 ‘달은 해가 꾸는 꿈’(1992년)으로, 흥행에 참패했다. 5년 뒤 ‘3인조’까지 연달아 실패하면서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폭망’했다”라고 표현하며 ‘형편없는 데뷔작’이라고 자평했다. 그런 그가 30년 만에 거장 중의 거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칸영화제 공식 소식지 스크린데일리가 경쟁부문 진출작 21편 중 ‘헤어질 결심’에 가장 높은 평점인 3.2점을 주면서 박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한때 나왔다.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평점은 수상 결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경험이 많아서 잘 안다”며 특유의 ‘쿨한’ 말투로 답했다.
흥행에 대한 솔직한 마음도 드러냈다. “‘브로커’나 ‘헤어질 결심’이 한국에서 개봉할 때 많은 관객이 이름을 들어서 알고,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네요.(웃음)”
칸=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