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별명 하나 갖지 않은 이는 찾기 어렵다. 키가 작으면 ‘땅꼬마’, 얼굴이 사각형이면 ‘도시락’, 얼굴이 까무잡잡하면 ‘시커먼스’ 같은 별명이 따라붙었다. 장점을 추켜세우는 것보다는 외모 특징이나 신체적 약점을 잡아서 놀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문제의식이 약했던 과거에는 장난처럼 넘어갔지만 요즘은 학교폭력으로 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대구에서는 동급생을 ‘진지충’, ‘설명충’이라고 불렀던 중학생이 법정에까지 섰다.
▷최근 일본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끼리 별명을 부르는 것을 금지하고, 성 뒤에 존칭인 ‘상(さん)’을 붙여 부르도록 교칙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뉘앙스가 다르긴 하지만 한국식으로 하자면 초등학생들끼리 서로 ‘○○ 씨’에 가까운 존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학생들이 별명을 부르는 게 ‘이지메’(집단 따돌림)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42만여 건의 ‘이지메’ 사례 중 60%가 ‘친구들의 놀림’이었다.
▷별명 금지 교칙을 놓고 일본 내에서는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상대에게 모욕이나 상처를 줘서는 안 되겠지만, 별명 자체가 사라지면 학교가 너무 삭막해지는 게 아니냐는 항변이 나온다. 금지를 명문화해 놓으면 아이들이 오히려 더 별명을 부르고 싶어지는 역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하는 교사들도 있다. 학교 밖에서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일본의 한 리서치 회사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별명 금지 조치에 반대하는 의견이 27.4%로 찬성(18.5%)보다 많았다.
▷한국이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부터 다시 증가 추세인 학교 사이버폭력 중 언어폭력은 42.7%로 가장 많다. ‘이백충’(부모 월수입이 200만 원)처럼 가정형편을 가지고 놀리는 저급한 별명까지 생겨났다. 거주하는 아파트 종류나 평수를 조롱하는 별명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사용되는 게 현실이다. 일본의 별명 금지 교칙을 수입해야 할 판이다. 꼭 ‘님’이나 ‘씨’ 같은 존칭을 붙일 필요도 없다. 상대의 소중한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불러주는 게 존중과 존경의 시작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