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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경쟁서 밀린 리커창이 주목받는 이유 [특파원칼럼/김기용]

입력 | 2022-05-31 03:00:00

‘잊혀진 총리’ 귀환 中경제 최악 방증
‘무오류 시진핑 신화’의 허점 드러내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며 최고 권력을 움켜쥔 마오쩌둥(毛澤東)은 1976년 사망할 때까지 27년간 종신 집권했다. 이후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은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7∼9명으로 구성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권력을 분점하도록 했다. 대체로 서열 1위인 국가주석이 국방, 외교, 정치 등을 주도했고 서열 2위인 총리가 경제를 담당하면서 서로를 견제했다.

2012년 시진핑(習近平)이 서열 1위로 올라서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권력이 집중되는가 싶더니 집권 2기(2017∼2022년)가 시작되면서 완전히 ‘시 주석의 중국’이 됐다. 서열 2위인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마지막 저항’이 2020년 6월에 있었다.

당시 리 총리는 “중국인 6억 명이 매달 1000위안(약 17만 원)도 못 버는 빈곤에서 고통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쓰촨성 청두에서 성공한 ‘노점 경제’를 중국 전역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 총리의 발언은 시 주석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었다. 시 주석은 2015년 5600만 명에 달했던 절대빈곤 인구를 2019년에 550만 명까지 줄였다고 했다. 그리고 2020년까지 0명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면적인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가 눈앞에 왔다고 강조하는 시 주석에게 리 총리가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었다. 실패가 있을 수 없는 ‘시진핑 신화’ 앞에 리 총리의 저항은 실패했고 그는 ‘잊혀진 총리’가 됐다.

이렇게 권력 경쟁에서 밀려 철저히 소외됐던 리 총리가 돌아왔다. 리 총리는 25일 경제성장을 위한 화상 회의에서 각 지방 수장들을 앞에 두고 “지금 중국의 경제 상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보다 더 안 좋다”면서 “경제가 성장해야 방역도 할 수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지방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최대한 빨리 집행하라”고 강하게 지시했다. 이 같은 지시들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점검하기 위해 감사단을 파견하겠다고 엄포도 놨다.

이날 리 총리의 발언은 2년 전 ‘빈곤층 6억 명’ 발언만큼이나 시 주석을 곤혹스럽게 하는 내용이다. 방역을 최우선으로 내세워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펴온 시 주석을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리 총리는 모든 지방 정부에 경제 회복을 위한 ‘창조적 경제 정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2년 전 리 총리를 나락으로 몰았던 ‘노점 경제’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중국이 직면한 경제 실상을 공개하고 대책을 주문하는 리 총리의 어조는 과거보다 강하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만큼 중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리 총리가 말한 ‘빈곤층 6억 명’이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면서 10억 명으로 늘었을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코로나19는 부자들보다 서민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

시 주석이 지난해 1월 이미 완성했다고 선언해 놓은 ‘샤오캉 사회’가 후퇴할 수도 있다. 5000년 동안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시 주석이 이뤄냈다며 홍보해 온 샤오캉이 무너지면 시 주석도 함께 무너진다. 시 주석은 이를 막기 위해 경제를 책임진 리 총리를 내세운 것이다. 리 총리의 재등장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돌아온 그를 통해 ‘시진핑 신화’에 오류가 있다는 점은 증명된 셈이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