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만에 정규 6집 낸 ‘빛과 소금’ “팬사인회 8할이 20대… 깜짝 놀라” “뮤비 찍고 랩 삽입… 오랜 꿈 이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5일 만난 ‘빛과 소금’의 장기호(왼쪽)와 박성식. ‘저 높이 날아!/그대 곁으로’라고 외치는 신곡 ‘Blue Sky’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네모난 화면 헤치며/살며시 다가와…’(‘샴푸의 요정’ 중)
1990년 가요계에 빛과 소금은 조용한 해일처럼 덮쳐왔다. 섬세하고 지적인 화성+차갑고 세련된 편곡+어딘지 우울하며 애절한 감성. 입체파 회화처럼 기묘한 이 ‘화학식’의 미학은 마치 불가해한 도형의 꼭짓점 같았다. 주류 차트를 뒤집진 못했지만 이 작은 폭발의 여진(餘震)은 세기를 넘어 지속됐다. 2019년 R&B 가수 정기고, 2020년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혼성 듀오 도시(dosii)가 리메이크하며 빛바램 없는 고전(古典)임이 입증됐다.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히트 곡을 만드는 것? 당대의 다른 이들이 지상 과제로 골몰했던 그 일을 우리는 하지 않았던 것이 되레 긴 생명력을 갖고 재조명된 비결인 것 같아요.”(박성식, 장기호)
실용음악학 교수로 근 20년 교단에 선 두 멤버에게 호기(好期)도 왔다. 장 씨는 2017년 서울예대에서 퇴직했다. 박 씨(호서대)는 20년 만에 쓰게 된 안식년(내년 2월까지)을 오롯이 빛과 소금 재결합에 헌납하기로 했다.
“2019년 서울레코드페어 때 저희 1집 LP 재발매 기념 팬 사인회를 열었죠. 사인을 기다리는 긴 줄에 20대 젊은이들이 팔 할이어서 깜짝 놀랐어요.”(장기호)
10개의 유려한 신곡으로 신작을 꽉 채웠다. 첫 곡 ‘Blue Sky’부터 거침없다. 순풍 만난 거함(巨艦) 같다. 교묘하고 세련된 화성과 선율로 푸른 청량감의 돛을 활짝 펼친다.
“2017년 제가 낸 화성학 책 ‘나는 모드로 작곡한다’의 예제 곡 하나를 발전시켰습니다. 행복감을 주는 아이오니언(Ionian) 모드(mode·음의 배열법)를 썼죠.”(장기호)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로 활동하다 탈퇴한 뒤 (미국 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Back on the Block’(1989년)을 듣게 됐어요. 언젠가는 나도 멋진 랩을 노래에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랜 꿈이 이뤄졌네요.”(박성식)
박 씨와 장 씨는 한때 봄여름가을겨울, 사랑과 평화의 멤버였다. 김현철, 고 김현식 유재하 등과 어깨를 걸고 당대 대중음악을 혁신한 ‘뉴 웨이브’ 집단의 핵이었다. ‘빛과 소금만 빼고 다들 (대중적으로) 잘된 것 같다’고 하자 박 씨가 조용히 테이블 위의 커피 잔을 들었다.
“빛을 받은 잔 밑에 생긴 그림자를 봐주세요. 빛이나 소금은 너무 당연해 그 존재를 잊기 쉽지만 삶에 꼭 필요하죠. 우리도 그런 팀이었다고 믿어요. 앞으로도 우리, 그렇게 활동하고 싶어요. 빛과 그림자처럼 둘이 붙어 다니며 70대, 80대가 될 때까지요.”(박성식)
“그리워하시던 좋은 음악, 다시 들려드릴 거예요. 앨범 제목 보이시죠? ‘Here we go’(다시 시작해보자!)”(장기호)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