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열린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 한 부부가 사건 당시 총격을 피해 학교에서 탈출한 자녀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유밸디=AP 뉴시스
신광영 국제부 차장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의 총기 난사 희생자 추모행사에는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자원봉사를 온 주민들이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2번 연속 지지할 정도로 공화당 텃밭인 유밸디는 총기 소지에 관대한 전형적인 텍사스 시골이다. 소총이 복권 경품으로 자주 내걸리는, 미국에서 가장 중무장한 지역 중 하나다.
이런 마을에서 지난달 24일 총기 사고로 초등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숨지자 무장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오랜 신념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희생된 아이의 삼촌이 “더 이상의 참사를 막으려면 교사들을 총으로 무장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다른 희생자의 할아버지가 “총기 소지의 자유가 과연 무엇을 지켜줬나. 그 자유가 결국 사람을 죽였다”며 반론을 편다.
총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총기 규제 강화에 곧잘 찬성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많다. 사건 당시 총을 갖고 있었다면 맞서 싸울 수 있고 애초에 범죄자가 총을 들고 위협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총은 총으로 막을 수 있다는 집단 심리는 현실에선 ‘환상’에 가깝다. 이번 유밸디 총기 난사범인 18세 고교생은 학교로 진입하자마자 4학년 교실에 난입해 100여 발을 쐈다. 마침 교사들이 총을 갖고 있어 곧바로 대응 사격을 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발생한 희생은 되돌릴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유밸디 경찰은 학교로 진입하고도 1시간 넘게 범인을 제압하지 못했다. 경찰은 “용의자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이면 대원들이 총에 맞거나 학생들 피해가 더 커질 수 있었다”고 했다. 경찰이 부실 대응을 했다면 잘못이지만 이는 무장한 경찰도 총기범을 단숨에 제압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총기가 확산되면 공권력의 화력은 더 강해지고, 그에 맞서 범죄자들 역시 더욱 치명적인 무기를 동원하면서 총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된 결과다. 총기범이 총을 든 시민에 의해 현장에서 제압된 사례도 극히 드물다.
교사나 경비원이 무장한다고 해서 총기 테러범들이 범행을 포기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들은 대부분 범행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살된다. 죽기로 마음먹은 이들을 상대로 ‘힘의 균형’을 통한 억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 위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총을 가진 사람이 총이 없는 사람보다 죽거나 다칠 확률이 5배가량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신의 대응 능력을 과대평가해 총이 없었다면 회피했을 위험을 무릅쓰기 때문이다.
실효성 있는 총기 규제 도입이 가장 확실한 해법일 텐데 미국인들은 거의 절반씩 찬반으로 갈려 접점을 찾는 데 번번이 실패해왔다. 2012년 26명이 숨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사건처럼 다른 나라라면 역사에 각인될 참사가 숱하게 이어져도 미국은 달라지는 게 없다.
상당수 미국인들은 아침에 자녀를 등교시키며 안아줄 때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공포를 매일같이 느낀다고 한다. 총기에 대해선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머물러 있는 미국은 구습을 제때 청산하지 못하고, 정치가 분열을 봉합하지 못할 때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를 보여준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