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청춘의 고뇌-이웃의 죽음…‘우리’에 대해 들여다본 거장

입력 | 2022-06-02 11:06:00

단편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출간한 작가 김훈




작가 김훈(74)은 2006년 첫 단편소설집 ‘강산무진’(문학동네)을 펴낸 뒤 심히 부끄러워했다. ‘강산무진’은 쓸쓸하고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스스로 ‘나’에 대해서만 썼다고 자책했다. 그는 당시 “‘우리’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도 쓰지 못하고 ‘나’의 이야기에만 머물고 있다”고 고백했다.

16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 스타 소설가보단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무게감 때문일까. 그는 이제 ‘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달 31일 출간된 두 번째 단편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문학동네)는 7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명태와 고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9급 공무원 준비생을 다룬 ‘영자’와 최전방경계부대(GOP) 근무 군인이 주인공인 ‘48GOP’는 청춘의 고뇌를 함께 고민한다. 젊은 신부가 늙은 수녀를 돌보는 ‘저만치 혼자서’와 70대 남성 노인이 등장하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통해 이웃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묻는다.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신간은 2020년 6월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 이후 2년 만이다. 왜 16년 동안 단편소설집을 안 냈나.

“게으름일 뿐이다. 일상 속에서, 소설이 될 수 있겠다 싶은 순간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 순간들을 모두 붙잡아놓고, 거기다 이야기를 입혀서 소설을 만들 수는 없었다.”

―신간은 ‘우리’에 대해 들여다본다.


“나는 ‘나’에 대해서 쓰기가 가장 편안하고, ‘너’에 대해서 쓰기는 어렵고, ‘그’에 대해서 쓰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니 ‘우리’에 대해서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일인칭에서 이인칭을 거쳐서 삼인칭으로 이행하는 단계마다 지옥이 펼쳐진다. 나는 ‘너’와 ‘그’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우리’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를 너무나 자주, 너무나 쉽게, 너무나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있다.”

―청춘의 고통을 쓴 이유는.

“‘영자’는 그 시대에서 추방된 존재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내가 ‘나’에 대해서 글 쓰는 동안에도 동시대로부터 벗어날 도리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대장 내시경 검사’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2004년 단편소설 ‘화장’이 떠오른다.


“‘대장 내시경 검사’의 주인공은 ‘화장’의 중년 사내보다 훨씬 더 늙어 있다. 이 늙은 사내는 더 이상 삶에 개입할 수 없고 다만 배웅해서 보낼 뿐이다. 죽음은 살아 있는 인간의 언어의 영역을 벗어나는 사태지만, 마음의 하중이 빠져나가서 가볍게 죽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딸 김지연 싸이런픽처스 대표가 ‘오징어 게임’ 제작자로 주목받았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의 공감을 받은 까닭은 국적에 관계없이 다들 약육강식과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평등’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데 어떤 작용이 있는 것인가를 요즘에 생각하게 됐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