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지역 주민들이 러시아군에 끌려가 고문당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1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러시아군에 고문당한 헤르손 주민들의 증언을 수집해 보도했다.
헤르손주 작은 마을 빌로제르카 대표 중 한 명인 올렉산더르 구즈씨는 “러시아군이 내 머리에 주머니를 씌웠다”며 “나에게 신장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고 협박했다”고 전했다. 구타로 온몸에 멍이 들기도 했다.
구즈씨는 러시아 침공 당시 군대가 마을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저항했으며, 점령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군이 구즈를 찾아왔다고 했다.
구즈씨는 “내 목과 손목에 밧줄을 묶은 뒤, 심문하는 동안 다리를 넓게 벌리도록 했다”며 “심문에 답하지 않을 땐 다리 사이로 구타했다”고 전했다. 이어 “쓰러졌을 때 숨이 막히기 시작했고, 다시 일어서려고 할 때마다 구타당했다”고 했다.
헤르손주 한 독립 매체 기자인 올레 바투린씨는 “러시아군이 무릎 꿇으라고 외쳤고, 내 얼굴을 가린 채 손을 등 뒤로 밀어 넣었다”며 “그런 뒤 등, 갈비뼈, 다리를 구타했으며 기관총으로 엉덩이를 찼다”고 전했다.
바투린씨는 러시아 침공 며칠 뒤 러시아군에 납치됐으며, 8일간 구금됐다. 고문으로 갈비뼈 4개가 부러졌으며, 구금되는 동안 다른 주민들이 고문당하거나 한 청년이 모의 처형되는 걸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헤르손 지역 의사 A씨는 BBC에 “(피해 사례 중에는) 혈액종, 찰과상, 자상, 감전, 손 결박, 목 교살 흔적 등이 있었다”며 “신체가 절단된 흔적도 봤다”고 전했다. 발과 손에 화상도 입었으며, 한 환자는 모래로 가득 찬 호스로 구타당했다고 했다.
A씨는 “성기 화상, 성폭행 당한 뒤 머리에 총상 입은 소녀, 등과 배에 인두로 입은 화상 등이 가장 심한 사례”며 “한 환자는 사타구니에 자동차 배터리 전선 두 개를 부착한 채 젖은 천 위에 서 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치료를 받지 않은 중상자들도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A씨는 “일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집에 머무르고 있으며, 일부는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며 “러시아군은 (주민들에게) 가족들을 살해할 거라고 말하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협박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군에 끌려가 고문당한 이유에는 러시아 편에 서지 않거나 반러 집회에 참여한 경우, 방위군 합류, 가족 구성원이 친러 분리주의 세력에 맞서 싸운 경우 등이 있었다. 일부는 이유 없이 끌려갔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헤르손을 포함한 점령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러시아 시민권 발급 절차가 시작됐으며, 이날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르면 올여름 러시아 편입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될 전망이다.
점령이 장기화하면서 고문 등 피해 증거를 보전하는 일은 어려워지고 있다.
탈출 주민들은 러시아 검문소에서 제지 및 구금될 것을 우려해 휴대전화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전부 삭제하고 있다. 구즈씨도 피해 사진을 삭제하기 전 증거 보전을 위해 해외에 체류 중인 아들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이 때문에 고문 피해 사례를 입증하기 위해선 피해자들과 직접 대화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BBC는 지적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고문과 실종을 우려하고 있다.
HRW의 벨키스 빌은 BBC가 입수한 고문 사례가 단체가 들은 증언과 일치한다며, 러시아군이 점령 지역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자의적 구금, 실종, 고문 등 학대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BBC는 러시아 국방부에 이같은 증언에 대한 입장을 요구했지만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