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물가 상승률이 5.4%로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3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한 가게에 원자재 가격인상에 따라 가격을 올린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작년 같은 달보다 5.4% 올랐다. 소비자가 자주 구매하는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는 6.7% 상승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8월 이후 13년 9개월 만에 6%대로 올라섰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각국의 수출 통제 탓에 고공 행진하는 원유, 원자재, 농축수산물 값이 한국인의 실생활에 타격을 주고 있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대인 미국, 유로존보다 낮아 보이지만 다른 선진국 물가에 포함된 자가 주거비용이 빠져 있어 실제로는 2% 정도 높여서 봐야 한다.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을 정부가 억눌러 왔기 때문에 요금 현실화가 시작되면 물가는 더 뛸 것이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린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달부터 양적긴축(QT·Quantitive Tightening)에 착수했다. 코로나 발생 후 돈을 풀기 위해 사들인 채권을 내다팔아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금리를 올릴 유럽중앙은행(ECB)이 22년 만에 0.5%포인트의 ‘빅스텝’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세계가 인플레와의 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그제 경제단체장들에게 “가격 상승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 달라”고 요청한 건 원가 상승 부담을 기업에 떠넘기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임금 인상 압박도 받고 있다. 물가가 올라 생활이 빡빡해진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오른 임금만큼 기업이 제품 값을 인상하기 시작하면 경제는 인플레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인플레를 이겨내는 길은 꾸준한 금리 인상을 통해 과잉 유동성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한은과 공조해 최적의 정책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근로자, 자영업자, 기업 등 경제주체들 역시 무리한 요구와 가격 인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