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박사’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저항 커 연기… 정부, 업계 반발 감수하고 시행을 포장재 없애거나 리필 활용하고 음식용기 등은 수거후 재사용해야 보증금제가 다회용기 확산 출발점… 쓰레기 없는 사회 시험대 될 것
지난달 18일 서울역 옥상에 있는 ‘알맹상점’에서 만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일회용 컵 대신 평상시 사용하는 다회용 컵을들고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시행 미뤄진 일회용 컵 보증금제
“그간 판매자와 소비자가 외면했던 일회용 컵 처리 문제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라’고 도입한 제도가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예요. 어렵다고 안 하면, 플라스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죠?”
홍 소장은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언급했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는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살 때 보증금(300원)을 내고 반납할 때 돌려받는 제도다. 2020년 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연간 약 28억 개가 사용되는 일회용 컵이 길거리에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시행 시기는 이달 10일이었지만 프랜차이즈 업계 반발이 커 12월로 미뤄졌다. 업계는 일회용 컵에 부착하는 반환용 라벨 구입비와 반환 업무를 맡을 추가 인력 등 부담이 크다고 주장한다.
○쓰레기 처리는 어려워지는데
대나무를 사용해 만든 칫솔.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일회용품 감축 로드맵은 있다. 당장 11월 24일부터 카페와 식당 내부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할 수 없고, 편의점과 제과점에서도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다. 대규모 점포에서 제공하는 우산 비닐, 경기장에서 많이 쓰는 플라스틱 응원용품도 퇴출된다. 또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식당과 카페에서 플라스틱 재질의 일회용 물티슈 사용도 금지되고, 2024년부터는 대형마트에서 축·수산물 포장용 랩으로 쓰는 폴리염화비닐(PVC) 재질의 포장재도 쓸 수 없다.
그러나 이 계획이 제때 실현될지에 대해 홍 소장은 회의감이 든다고 한다. 그는 “2년 전 예고된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도 미뤘는데, 앞으로 이런 규제도 업주들이 반발하면 다 미뤄줄 것이냐”고 반문했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로 인한 반발은 나올 수밖에 없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전 지구의 목표 ‘쓰레기 감축’
포장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고체 비누 형태의 샴푸 바(bar).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유럽연합(EU)은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플라스틱 포장재 재활용률을 2025년까지 50%로 끌어올리는 ‘플라스틱 전략(Plastic Strategy)’을 2018년 발표했고 지난해부터는 재활용이 안 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에 별도의 플라스틱 세(tax)를 부과하고 있다. 또 플라스틱 종류별로 구체적인 감축 목표와 전략 과제들을 세우고 있다. 예컨대 비닐은 제품들의 재질 구조를 통일해 재활용이 잘되게 만들고,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기술에 정부와 기업이 집중 투자하는 식이다. 홍 소장은 “이와 같은 국제사회 흐름을 우리나라 기업들이 모를 리 없다”며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현재의 일회용 포장재와 일회용품 위주의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 없는 사회’가 되려면
플라스틱 수세미 대신 사용하는 천연 수세미.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알맹상점과 같은 제로 웨이스트 가게들이 마을마다 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2년 전 서울 마포구에 처음 문을 연 알맹상점은 포장재 없는 상품, 리필 가능한 상품만 팔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엔 서울역에 2호점을 냈고, 최근엔 제로 웨이스트 가게 운영 지침서 격인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도 출간했다. 홍 소장은 제로 웨이스트 가게들이 소비자들에게 우유팩과 양파망, 실리콘 등 같은 것끼리 모으면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을 받아 모은다는 점에 주목한다.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손쉽게 이용하면서 ‘제대로 모으면 재활용할 수 있구나’ ‘매번 새로 사던 화장품도 리필해서 살 수 있구나’란 인식이 생기면 사회 분위기가 바뀔 겁니다.”
샴푸·로션 등을 리필하는 코너.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