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셀림/앨런 미카일 지음·이종인 옮김/848쪽·3만8000원·책과함께
‘폐하는 저를 보내 인도와 그곳 군주들을 개종하기 위한 수단을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항해일지에 남긴 기록이다. 서구사에서 콜럼버스는 미지의 대륙에 대한 유럽인의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막대한 부를 축적하려는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한 이후로 약 500년의 역사를 ‘서양의 부상’이자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에 맞서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당시 동양의 패권을 손에 쥔 오스만제국을 우회하지 않고서는 항해가 불가능했던 탓에 콜럼버스가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콜럼버스 항해는 팽창하는 이슬람 세력을 멸하고 신대륙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는 ‘십자군 전쟁’의 일환이었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셀림 1세 초상화. 그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는 항로인 북아프리카 모로코 점령 계획을 세우던 중 1520년 9월 22일 전염병으로 숨졌다. 저자는 그가 모로코를 손에 넣었다면 세계사의 향방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책과함께 제공
1453년 5월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묘사한 그림. 술탄 셀림의 조부인 메흐메트 2세는 동로마 제국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꿨다. 유럽인들은 당시 사건으로 ‘가톨릭의 한쪽 눈이 뽑혔다’고 여겼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원제 ‘신의 그림자(God‘s Shadow)’가 말해주듯 오스만제국이 드리운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517년 예멘을 오스만제국에 편입한 셀림은 이곳에서 생산한 커피콩을 세계로 수출한다. 오스만제국에 뿌리내린 커피하우스 문화는 지금까지 카페 문화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셀림의 유산은 대항해시대와 종교개혁을 추동하며 세계를 바꿨을 뿐 아니라 커피처럼 우리 일상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어쩌면 우리도 수백 년 전 유럽인처럼 여전히 술탄 셀림의 그림자 아래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