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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시위’ 지우려는 中-홍콩… 대만-美선 “잊지말자” 추모열기

입력 | 2022-06-06 03:00:00

‘톈안먼 33주년’ 엇갈리는 표정



홍콩선 톈안먼 추모 통제, 미국선 中 규탄 시위 4일 홍콩 빅토리아파크에서 경찰들이 ‘X’자 표시가 그려진 마스크를 쓴 시위 참가자를 둘러싼 채 물러나라고 압박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1990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집회가 열렸던 이곳에서 더 이상 추모 행위가 벌어질 수 없도록 통제했다(위쪽 사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중국영사관 앞에서 톈안먼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종이로 만든 관과 조화를 든 사람들이 중국 당국을 규탄하고 있다. 홍콩·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당국이 유혈 진압한 ‘톈안먼 민주화시위’ 33주년을 맞아 중국과 홍콩 당국이 이 사건을 아예 역사에서 없애 버리려 시도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포털에서 ‘톈안먼’의 검색을 불허하고 희생자를 추모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민주인사까지 속속 체포했다.

반면 대만 미국 등에서는 추모 열기가 달아올랐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중국이 일종의 역사 조작을 일삼고 있다며 규탄한 뒤 “희생자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 유럽연합(EU), 호주, 캐나다 등 홍콩 주재 서방 주요국 공관 또한 4일 사무실에 촛불을 밝히거나 소셜미디어에 촛불 사진을 올려 희생자를 추모했다.
○ 홍콩서도 추모 분위기 철저 진압
홍콩 당국은 3일 오후 11시부터 5일 0시 30분까지 도심 ‘빅토리아파크’를 전면 봉쇄하고 도심 곳곳에 경찰을 대거 배치했다. 이 공원에서는 1990년부터 2019년까지 30년간 매년 6월 4일 오후 8시에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중국 본토에서는 열릴 수 없는 행사가 홍콩에서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이 홍콩에 약속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증거로 여겨졌다. 하지만 2020년부터 올해까지 당국이 3년째 집회를 불허하면서 ‘홍콩의 중국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5일 홍콩 밍보에 따르면 홍콩 시민단체 사회민주연선 소속 여성 시민운동가 리우샨칭, 인권변호사 초우항텅 등을 포함한 최소 6명의 민주인사가 경찰에 연행됐다. 체포 당시 리우는 톈안먼 시위에 참가했다가 22년간 복역한 고 리양왕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다. 이 외에 시내에서 검은 옷을 입고 조화를 들거나 촛불을 든 이들은 모조리 검문 대상이 됐다. 홍콩 번화가 코즈웨이베이에서 감자를 깎아 양초 모양으로 만들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려던 행위 예술가도 체포됐다.

중국 당국 도한 온라인에서 ‘톈안먼’ ‘6·4’ 등의 단어 검색 및 문장 전송을 금지했다. 중국돈 64위안 또한 송금할 수 없다. 중국은 톈안먼 사태가 일종의 ‘정치 풍파’에 불과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대만-서방선 추모 열기
4일 밤 수도 타이베이 등 대만 곳곳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촛불로 ‘8964’를 만들며 “1989년 6월 4일을 기억하자”고 외쳤다. 차이 총통은 이날 페이스북에 “홍콩에서 6·4에 관한 집단 기억이 조직적으로 지워지고 있다”고 중국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만 민주화 인사들은 홍콩 당국이 지난해 12월 기습적으로 철거한 톈안먼 희생자 추모 조각상 ‘치욕의 기둥’을 대만에서 재건할 뜻도 밝혔다. 덴마크 조각가 옌스 갈시외트가 만들어 1997년 홍콩대에서 설치된 이 조각상은 톈안먼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했다.

블링컨 장관은 3일 성명에서 “톈안먼 학살 33주년을 기념한다. 불의에 맞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6월 4일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4일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은 건물 창가에 전자 촛불을 대거 밝혔고, 페이스북에 블링컨 장관의 성명을 게재했다. 홍콩 내 호주, 캐나다, EU 주요국 공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