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교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劇化)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중략) 죽음의 얼굴 앞에서는 모든 사상과 이념이 그 의미를 잃는다. 누구도 미리 대비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영원의 세계가 열린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중
가끔 어떤 말들은 너무 거대하다. 대체 전쟁이나 죽음 같은 말들을 어떤 온도로 읽어내야 할까. 그 말들에 딸려 나오는 울음과 비명은 또 얼마큼의 볼륨으로 들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사건을 정보가 아닌 감정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너무나 아득해서 매번 피하고만 싶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야기들일지 모른다. 감히 작다고 여겨지는 이야기들. 그래서 쉽게 잊혀지는 것. 그들의 삶이 거창한 구호보다 먼저 존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날에 거대 서사 속에 묻힌 삶 자체를 떠올리려고 하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그들의 삶을 극화하는 대신, 우리가 감히 이해할 수 없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비로소 기억은 그들을 위한 일이 되기 시작한다. 번지르르한 서사는 언제나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선교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