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위해 산학연 상호작용 촉진 중요 ‘선도대학 육성사업’ 10년 됐지만 아직 미비 사회적 가치 창출하는 협력 방안 도입해야
이성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혁신 연구의 대표적 석학인 크리스토퍼 프리먼은 일본이 성장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국가혁신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국가혁신체제란 새로운 지식의 창출과 확산, 활용에 관여하는 민간과 공공의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국가혁신체제가 우수할수록 기술혁신도 잘 일어나는데, 프리먼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초과학이 부족한 일본이 주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혁신을 촉진하는 기업 간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와 지원 제도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즉, 국가 차원에서 활발한 기술혁신을 기대한다면 민간 기업, 연구기관, 대학과 같은 개별 조직들의 역량을 높이는 것 못지않게 이들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혁신을 지원하는 제도가 중요하다. 이에 기업과 대학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작된 정부 지원 사업인 산학연 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 3.0)이 2012년 1단계를 시작으로 어느덧 3단계에 접어들었다. 얼마 전 3단계 사업 수행대학 76개교가 선정되어 최대 6년간 지원을 받을 예정이며, 올해 302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1, 2단계 사업을 통해 산학협력의 기초가 구축되었으나 3단계 사업이 진행된다는 것은 산업체와 대학이 상생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이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로 산업 인력의 급격한 감소가 예상되는 현 상황에서 현장 실습과 인턴십은 경쟁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산학연 공동의 노력을 통해 운영돼야 한다. 프랑스판 실리콘밸리로 알려져 있는 ‘스타시옹 F’는 철도 차량기지를 개조한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보육 공간이다. 이곳에서 대학은 기술과 인력을 공급하고 기업은 인재를 발굴하며 육성한다. 창업자들은 대학과 연구소, 투자사 등과 자유롭게 교류하며 성장한다. 현장 실습과 인턴십에 있어 ‘스타시옹 F’와 같이 산학연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또한 일회성 공동연구를 넘어 중장기적 관점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산학연 협력 모델이 아직은 부족하다. 대학에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교수와 대학(원)생, 그리고 연구 장비가 있다. 이러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대학이 교육과 연구의 기능 외에도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안이 최근 논의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리빙랩이다. 리빙랩이란 우리의 생활공간을 실험실로 생각하고 민간-공공-시민이 협력하여 일상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리빙랩을 통해 학생들은 전공을 실생활에 적용해 보고, 대학은 지역 문제를 해결하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기업은 신제품과 서비스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대학을 리빙랩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영국 맨체스터대는 학생들이 외부와의 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경험을 갖게 한다. 이를 위해 리빙랩 프로젝트를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경제·사회 발전과 환경 보전이 조화를 이루도록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약속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와 연계해 운영한다. 에든버러대에서도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어 리빙랩을 운영한다. 대학의 연구 결과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일부 대학이 지역혁신을 위한 산학연 협력 플랫폼이 되고자 리빙랩을 도입해 오고 있으나 아직 내부 구성원과 외부 기관의 참여가 저조한 실정이다.
국가 경쟁력 확보에 있어 과학기술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대학의 역할은 더욱 강조된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재를 적시에 배출하고 대학 연구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산학연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1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경쟁력은 64개 국가 중 47위다. 과학기술 선도 국가로 도약하려는 우리나라에 대학 교육 변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