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발달장애 치료 못 받아 말을 잃은 여섯살 막내

입력 | 2022-06-07 03:00:00

[코로나 늪에 빠진 아이들]〈상〉갈수록 뒤처지는 삼남매
코로나 이후 엄마 가게 매출 급락… 비용 감당 어려워 특수치료 줄여
특수유치원도 방역 탓 휴원 잦아… “엄마” 불렀던 막내, 이젠 말못해



발달장애가 있는 강정서(가명·왼쪽) 양이 지난달 17일 강원 원주시의 집에서 어머니 박 씨와 TV를 보고 있다. 정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실외 활동이 줄면서 TV시청 시간이 크게 늘어났다. 원주=최미송 기자 cms@donga.com


강정서(가명·6) 양은 2년 만에 ‘엄마’라는 단어를 잊었다.

발달 장애를 갖고 태어난 정서는 언어 치료를 꾸준히 받은 덕분에 간단한 단어는 말할 수 있게 됐다. 홀로 삼남매를 키우는 박지희(가명) 씨는 막내 정서가 처음 ‘엄마’라고 불렀던 3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갈수록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가졌다.

“어, 어, 어….”

그러나 기자가 지난달 17일 강원 원주시 박 씨 집에서 만난 정서가 할 줄 아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정서의 언어 능력을 퇴행시킨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였다.

박 씨는 4년 전 남편과 헤어진 후 단체 모임 전문 도시락 가게를 열었다. 일은 고됐지만 네 식구의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가게가 자리를 잡을 무렵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행사가 사라지고 단체 주문이 끊기면서 매출이 10분의 1로 곤두박질쳤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월 100만 원 넘게 내며 매일 받던 정서의 특수치료를 박 씨는 주 3회로 줄였다. 설상가상으로 정서가 다니는 특수유치원은 방역 때문에 자주 문을 닫았다. 코로나19는 또래들이 말하는 걸 보고 들을 기회마저 정서에게서 앗아갔다.

코로나19의 타격은 정서의 오빠들에게도 미쳤다. 다니던 학원을 끊었는데 온라인 수업을 들을 기기조차 마땅치 않았던 첫째 정현이(가명·15)는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학교 급식 대신 집에서 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으로 혼자 끼니를 때우던 정태(가명·13)는 체중이 20kg이나 늘어 비만이 됐다.

코로나19는 취약계층 아동의 발달과 학습, 건강 등에 깊은 상흔을 남기며 사회적 격차를 벌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녀와 사는 기초생활수급자는 2019년 4월 34만2000가구에서 올 4월 41만5000가구로 7만 가구 이상 늘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와 함께 코로나19로 자녀와 사는 취약계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지 두 달이 돼 가지만 여전히 늪과 같은 ‘사회적 롱코비드(Long COVID)’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빈곤층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급식 끊겨 라면 혼밥에 20kg 찌고… 줌 수업용 PC 못사 성적 뚝


막내, 유치원서 말 배울 기회 놓치고 둘째는 인스턴트 끼니 때우다 ‘비만’
큰아들, 학원 못가 수학 60점→20점… 3남매 발달-건강-학습 ‘코로나 직격’
“코로나 시기 격차, 평생 갈 가능성… 아이들에 기회 제공 긴급 지원을”



정서는 요즘 집에만 오면 엄마에게 휴대전화를 달라고 조른다. 유튜브로 ‘키즈카페 영상’을 보기 위해서다. TV도 매일 2시간가량 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보다 두 배로 늘어난 것. 코로나19 기간 특수유치원이 절반은 문을 닫으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던 정서에게 새로 생긴 습관이다.

엄마 박 씨는 “비용 때문에 좋아하는 키즈카페에 자주 못 가는데, 영상으로라도 많이 보겠다는 게 안쓰러워 휴대전화 영상 보는 시간을 못 줄이고 있다”며 말을 흐렸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도움을 받아 만난 정서네 가족은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구성원 4명 모두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학원 끊고, 컴퓨터 1대로 2명이 온라인 수업
“여유 있는 집들은 코로나 기간에 사교육을 많이 시켰다던데 우리 집은 학원 보낼 형편이 안 되니까….”

박 씨는 중학교 3학년인 첫째 아들 정현이 얘기를 꺼내며 한숨부터 쉬었다. 2년 전에는 60점대였던 수학 성적이 이번 중간고사에서 20점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초기 학교에선 “온라인 수업도 대면 수업이랑 똑같으니 걱정 말라”고 박 씨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온라인 수업은 칠판도 잘 안 보였고, 수업 중 모르는 것이 나와도 물어보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또래들은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으로 공백을 채웠지만 정현이는 오히려 학원을 그만둬야 했다.

동생 정태도 같은 시간 ‘줌(Zoom)’으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지만 집에 컴퓨터는 한 대뿐이었다. 정태가 컴퓨터로 수업을 들으면 정현이는 휴대전화로 들어야 했다. 박 씨가 뒤늦게 무리해 25만 원짜리 중고 컴퓨터를 구입했지만 정현이는 한번 놓친 수업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저소득층 가정 아동의 학습 부진 심화는 정서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동권리보장원의 2021년 조사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빈곤층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학력 격차가 더욱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취약가정 아동은 10명 중 1명꼴로 디지털 학습기기가 아예 없었고, 3명은 가족의 기기를 썼다. 응답자들은 성적 하락의 원인으로 ‘코로나19에 따른 온라인 수업 시행’(55.8%)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박 씨는 정현이가 ‘레고 디자이너’의 꿈까지 포기했다며 가슴을 쳤다. “정현이가 어느 날 ‘엄마, 미술학원 안 다녀도 돼’라고 하더라고요. 돈이 안 드는 진로를 택하겠다며….”
○ 급식 대신 라면 ‘혼밥’에 비만 돼
중학교 1학년인 둘째 정태는 건강이 문제다. 키는 157cm로 또래 평균 정도인데, 체중은 72kg이어서 중증 비만에 가깝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년 전에는 키 152cm에 체중 52kg으로 보통이었다. 그러나 키가 5cm 자라는 동안 체중은 20kg이나 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중지가 문제였다. 출근하는 박 씨를 대신해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 영양 균형이 잡힌 급식을 먹던 정태는 집에서 홀로 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게 됐다.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던 집 근처 놀이터까지 코로나19 이후 폐쇄돼 뛰어놀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정태의 체중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초중고교생 32.1%가 과체중이나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26.7%)보다 5.4%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의 돌봄을 충분히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 아동들은 특히 코로나19 기간 동안 영양 불균형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학교가 문을 닫는 사이 생긴 보호자의 돌봄 공백은 신체에 상흔으로 남았다. 정태는 지난해 허벅지에 손바닥만 한 붉은 흉터가 생겼다. 박 씨가 일하러 나간 사이 혼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려다 뜨거운 국물을 엎지르면서 3도 화상을 입어 두 번 수술을 했다. 박 씨는 “몸이 아픈 막내를 돌보느라, 병원에 있는 둘째에게 잘 가보지도 못했다”며 울먹였다.
○ “학령기 격차가 평생 격차로”
생활고에 지쳐 가던 박 씨는 올 4월 ‘선양낭포암’이라는 희귀암 진단까지 받았다. 침샘에 암세포가 퍼져 있다는 박 씨는 기자와 간단한 대화를 하면서도 숨이 차는지 마스크를 몇 번이나 들췄다. 고대하던 대로 사회적 거리 두기는 해제됐지만 정작 건강 문제로 가게 문을 닫은 상태다.

박 씨는 코로나19 기간 발달이 지연되고, 공부에서 뒤처지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며 발생한 격차가 평생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박 씨는 “다른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19가 끝나간다고 좋아하는데, 우리 애들은 앞으로도 더 안 좋아질 일만 남은 것 같다”며 “첫째와 둘째에게 엄마가 잘못되면 막내는 너희들이 책임지려 애쓰지 말고 나라에 맡기라고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에게 생긴 격차가 성인이 된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격차를 좁히기 위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성장기의 문제들은 단계적으로 발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재 결핍된 부분이 다음 성장 단계에서 다시 발목을 잡을 소지가 크다”며 “코로나19 기간 취약계층 아동들이 겪은 피해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사회적 지위 등 전 생애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원주=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