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발전을 이끌 전문인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인력난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전공자를 크게 늘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육성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하나의 해법이 제시돼 주목받는다. 국내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의 정착을 적극 지원해 인력난 해소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 유학 외국인은 연구역량뿐 아니라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관심과 채용 수요도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사 기업 현황. 출처=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KOITA)가 국내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외국인 이공계 석, 박사 인재에 대한 기업 수요를 조사, 분석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이번 조사 대상 기업은 대기업 6개(2%), 중견기업 13개(4%), 중소기업 185개(62%), 벤처기업 96개(32%)로 기업부설 연구소를 보유한 국내 300개 기업이다.
먼저 채용현황을 살펴보면, 300개 기업 중 73개 기업(약 24%)은 외국인 연구인력을 고용했다. 해당 기업들의 평균 외국인 채용 수는 2명으로, 학력별로는 학사 1.1명, 석사 0.6명, 박사 0.3명이다. 이중 국내 유학생 출신 외국인은 35% 수준인 0.7명이다.
외국인 연구인력 활용 전공 분야는 '전기/전자/컴퓨터(52%)'가 가장 많았고, '화학/생명과학/환경(21%)', '인문/사회과학(12%)', '의료/약학/보건학, 기계, 재료' 등이 각각 8% 수준으로 뒤를 이었다.
채용 방식은 공개채용(수시모집)이 55%로 가장 많았고, 지도교수 등 학계 추천(40%)이 뒤를 이었으며, 홍보 방식은 채용 사이트가 74%로 높게 나타났다.
외국인 연구인력 채용 및 인력 현황. 출처=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출신 국가별 외국인 연구인력 선호도는 아시아권이 51%로 높게 나타났다. 이 가운데 베트남(27%), 중국(22%), 인도(21%) 출신 외국인을 기업에서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일본(11%), 필리핀(7%), 인도네시아(7%)가 뒤를 이었다. 출신 지역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37%로 조사됐다.
기업들 "외국인 유학생 정보 부족, 채용 꺼리는 이유"
현재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은 총 8만6562명이며 이중 약 10%인 8321명이 외국인 유학생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한국직업능력연구원(2017~2019) 조사에 따르면 총 2767명의 국내 박사학위 취득 외국인 유학생 중 42%만 국내에서 취업했으며, 나머지 58%는 자국으로의 귀국 또는 해외 취업을 선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 연구인력을 채용하지 않는 기업은 조사 대상 중 76%에 달했는데, 이들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정보 부족(43%) 때문에 외국인 유학생 채용을 꺼리고 있었다. 이어 내국인 연구인력으로 충분하다는 응답(17%)과 한국어 의사소통의 어려움(15%), 행정적 비용 및 제약(9%) 순으로 응답이 제시됐다.
외국인 미채용 기업의 60%는 향후 외국인 연구인력을 채용할 계획이 있다는 개방적 입장을 보였고, 선호 학력은 석사급(61%), 학사급(47%), 박사급(27%)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기업의 69%가 외국인 연구인력을 현재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응답하면서, 외국인 연구인력 인재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서비스 제공(32%)과 채용 보조금 지원(26%), 고용비자 발급조건과 절차 대폭 완화(20%) 등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김이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총장은 “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 유학생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와 높은 수준의 연구역량을 동시에 갖춘 고급 인력이다"라며 "이같은 외국인 인재들이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졸업 후 정착 등에 산·학·연·관이 뜻을 모아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