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청와대 전망대에서 해가 정면에 있는 ‘역광’ 상태에서 전문가용 카메라로 찍은 사진(위)과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실제와 달리 아래 사진이 더 파란 하늘로 찍혔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재명 사진부 차장
2000년 중반 기자생활을 시작할 당시 부서의 한 선배는 매일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서 퇴근했다. 사진기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장비를 휴대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한 선배의 노력은 여러 차례 단독사진으로 이어졌다. 당시에도 휴대전화는 있었지만 지금의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에는 미치지 못했다. 화질이 떨어져 신문 지면에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요즘은 기자들이 예전처럼 퇴근길에 카메라 가방을 싸진 않는다. 스포츠 사진이나, 망원렌즈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휴대와 기동성이 편한 스마트폰이 기자들의 전문가용 카메라를 대신한다. 또한 프로모드에는 셔터 속도와 초점 등을 설정할 수 있는 기능도 탑재돼 있다. 심지어 제조사들은 밤하늘 별과 은하수도 찍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스마트폰은 출퇴근 버스나 지하철, 관광지 등을 불문하고 언제나 사람들 손에 들려 있다. 사진을 찍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영화도 본다. 그렇기에 사건사고는 언론보다 현장의 시민들을 통해 더 빨리 전해지기도 한다.
최신 스마트폰일수록 카메라 성능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욕망에 맞춰서 진화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사진 찍기 전 풍경모드나 음식모드로 설정하거나, 아니면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해 본인이 원하는 사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르기만 하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높은 채도와 밝기가 가미된 사진이 나온다.
지난달 청와대 개방에 맞춰 70여 년간 일반인 접근이 통제됐던 북악산 등산로가 일반에 공개됐다. 군이 설치해 놓은 철조망을 따라 산에 올랐다. 청와대 전망대에 도착해 광화문 도심을 내려다보는 시민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후 시간이라 해가 정면에 있는 ‘역광’ 상태였다. 산에 오르기 전 상상했던 파란 하늘 아래 시민들의 모습은 전문가용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었다. 그런데 스마트폰 카메라에는 파란 하늘이 찍혀 나왔다.
최근 들어 접하는 야간 산불이나 공장 폭발사진에서 불의 크기는 놀랄 정도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쉽게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얼마 전 SNS와 인터넷에 퍼진 남한산성 산불은 마치 불이 아파트를 집어삼킬 정도였다. 때마침 퇴근길이었던 나는 버스에서 내려 현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한 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라 불씨는 잘 보이지 않았다. 진화가 거의 완료된 상태였다. 현장 상황을 전하기 위해 ‘인증샷’을 찍었다. 그런데 사진에는 불과 연기가 보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사진엔 나타난 것이다. 이는 어두운 곳에서 적은 빛을 증폭시키는 스마트폰의 특성 때문에 불 주변의 연기도 시뻘겋게 보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야간 산불의 경우 사진은 실제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커 보이게 된 것이다.
19세기 초 사진이 발명된 이래로 사진은 미술과 달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진=사실’이라는 믿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한 본질적 특성 때문에 증거자료로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그러한 신념이 앞으로는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사진은 사실이다’라는 오래된 신뢰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겠다.
김재명 사진부 차장 ba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