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낯설었다. 이전 직장 선배 정년퇴임 모임에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선배는 한 직장에서 무려 27년을 다니고 만 61세에 명예롭게 퇴직했다. 친숙한 선배가 마련한 그 자리가 내게 익숙지 않았던 것은 지난 20여 년 동안 퇴사하는 사람은 정말 많이 봤어도 정년퇴임을 한 직장인을 딱 두 사람 봤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 선배 합쳐서.
통계청 자료를 살펴봤다. 2021년 55∼64세 취업 유경험자 대상 조사에 따르면 정년퇴직 비율은 7.5%였다. 2011년 55∼79세 취업 유경험자 대상 조사에서는 10.9%였다. 가장 오래 다닌 주된 직장 퇴직 나이는 2011년 53세였던 것이 2021년에는 49세로 내려왔다. 그날 모임에는 젊은 후배들도 다수 참여했지만, 누구도 이 선배처럼 정년퇴임할 것 같지는 않았다.
코로나 이후 재택 혹은 하이브리드 근무와 같은 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유연한 제도 도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그 다음 단계 변화는 무엇일까?
일하는 장소가 유연해지면 회사 입장에서는 출퇴근 관리가 쉽지 않고 결국에는 일하는 시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풀타임이라는 용어를 10년 뒤에도 쓰게 될까? 10년 뒤 고용 계약서에는 정해진 시간이 들어갈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경영대학원 교수로서 2021년 ‘미래의 사무실’이라는 책을 펴낸 피터 카펠리 교수는 유연한 근무 체계에 따라 고정된 사무실이 점차 사라지면서 직장인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일하게 되겠지만, 더 이상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형태로 나아갈 것이라 예상한다.
앞서 살펴본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주된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이 2011년 20년에서 2021년 15년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가 살면서 직장에서 정규 직원으로 보내는 기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기업은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제각각 일하는 실험을 해봤고, 생각보다 잘 운영된다는 학습을 했다. 직장인들은 집이나 카페, 공유 사무실에서 자유롭게 근무하는 것의 이점을 알게 되었다.
단기적으로 일하는 장소와 시간 유연성, 장기적으로 직장과 계약 형태도 ‘유연하게’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직장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2020년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까지 가장 중요한 기술 10가지를 발표했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자기 관리의 기술 2가지가 포함된 점인데, 하나는 능동적 학습, 또 하나는 회복 탄력성과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것이다.
이런 커다란 변화 속에서 스트레스나 외로움도 직장인에게 커다란 도전이 된다. 힘들 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두는 것, 때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나 역시 심리 전문가와 수년째 매달 상담을 하며 도움을 받고 있다.
기대수명은 늘어나는데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수명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해오던 사무실이라는 공간과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하던 방식에 낯선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유연함은 이득만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가져온다.
이런 때일수록 일하는 방식과 생존과 성장의 방식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25년 나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을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