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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숨진 친구 피 바르고 죽은척 해” …美 하원 총기 규제법 가결

입력 | 2022-06-09 15:08:00


미국 하원이 8일(현지 시간) 총기 구매 가능 연령을 18세에서 21세로 높이는 총기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텍사스주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로 초등학생 19명 등 21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15일 만이다.

미 하원은 이날 ‘아이 보호법(Protecting Our Kids Act)’으로 불리는 총기 규제법을 찬성 223표 대 반대 204표로 가결했다. 이 법안은 반자동 소총을 구입할 수 있는 연령 제한을 기존 18세에서 21세로 상향하고, 총기 소유자의 관리 소홀로 미성년자가 총기에 접근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하게 하면 해당 총기 소유자에게 최대 5년의 징역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총기판매상이 15발 이상의 탄알이 든 탄창을 팔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과 이른바 ‘유령총’ 유통을 막기 위해 대리인을 통한 총기 구매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반자동 소총을 자동소총으로 만들어주는 장치인 ‘범프스톡(bump stock)’의 민간인 소유를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유밸디의 초등학교 등 무차별 총격사건에 반자동 소총이 대거 사용된 점을 고려한 것이다.

미 하원의 총기규제법 통과는 이날 오전 미 하원에서 열린 총기 난사 희생자 유족들의 청문회 직후 이뤄졌다. 청문회 화상 증언에 나선 유밸디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인 미아 세릴로(11)는 “총격범은 선생님에게 ‘굿나잇’이라고 말하고 머리에 총을 쏘고 반 친구들을 쐈다”며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질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어깨에 파편을 맞은 세릴로는 죽은 친구의 피를 몸에 바르고 숨어 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딸 렉시 루비오를 잃은 킴벌리 루비오 씨는 “딸이 학교에서 상을 받는 것을 보고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약속하고 돌아왔는데 그 순간이 가장 후회된다”며 “총보다 아이들이 더 중요하다. 총기 규제에 실질적인 진전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하원에서 가결된 총기규제 법안이 미 상원을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이날 하원 투표에서도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져 찬반이 팽팽히 나뉘었고,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양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무력화하기 위해선 찬성 60표가 필요한 상황이다. 상원은 현재 위험인물의 총기 구매를 규제하는 이른바 ‘적기(red flag)법’ 등에는 의견 접근을 이뤘지만 일부 조항을 두고 여전히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