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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볼서 스리쿠션 전향 김진아, LPBA 20일 데뷔

입력 | 2022-06-10 03:00:00

어릴적 아버지 사업따라 제주로… 학교생활 따돌림에 당구만 집중
김가영 찡그리는 모습도 따라해… 5년전 후원자 권유로 종목 바꿔
작년까지 3년째 아마추어 1위에… 하나원큐 지명돼 김가영과 원팀



여자프로당구(LPBA)의 새 얼굴 김진아가 8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당구장에서 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당구가 유일한 안식처였던 소녀가 있었다. 부산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제주도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아버지를 따라 제주도에서 살게 된 소녀는 학교에서는 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리느라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방과 후에 아버지 당구장에 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교복 입고 기가 막히게 공을 치는 소녀가 있다’는 소문이 제주도 전역에 퍼질 정도였다.

이로부터 17년이 지나 소녀는 여자프로당구(LPBA) 선수가 됐다. 20일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을 통해 LPBA 무대에 데뷔하는 ‘양빵’ 김진아(30·하나원큐) 이야기다. 8일 서울 영등포구 옵티머스빌리어드 당구장에서 만난 그는 “꾸준함을 무기로 매해 성장해 왔다고 자부한다. 프로 첫 시즌이지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진아는 원래 포켓볼 선수였다. 당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5년 당시 그의 롤 모델은 ‘포켓볼 마녀’ 김가영(39)이었다. 김가영처럼 유명해지고 싶어 당구 기술부터 몸짓까지 늘 따라 했다. 김가영이 당구대 앞에서 인상 쓰는 모습까지 따라 하느라 중고교 시절에는 늘 미간을 찌푸리고 다니기도 했다.

아마추어 선수였던 아버지 김명순 씨(58) 피를 물려받은 데다 학교, 당구장, 집만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면서 실력도 금방 늘었다. 당구를 시작하고 3년이 지난 2008년 주니어 포켓볼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위로 태극마크를 달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뒤로는 하루 10시간 이상 훈련에 매진했다. 1시간 거리의 훈련장을 매일 걸어서 다니며 체력을 키웠고, 연습 전과 후에는 꼭 헬스장에 들렀다. “하루 한 번씩 코피를 쏟을 만큼 노력했다”는 김진아는 키 162cm, 몸무게 44kg으로 당구 선수로서는 왜소한 체격에도 2014년 전국체육대회에서 최연소 금메달을 따냈다.

스리쿠션으로 전향한 건 당구 시작 12년 만인 2017년이었다. ‘전국체전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포켓볼 입상 경력이 화려했지만 연평균 수입은 1500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고시텔, 단칸방 등을 전전하며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아예 새 직업을 찾으려던 김진아의 손을 잡아준 건 당구용품업체 고리나의 임정철 대표였다. 임 대표는 스리쿠션 전향을 조건으로 후원을 약속했다.

종목을 바꾼 지 5년 만에 김진아는 스리쿠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김진아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대한당구연맹(아마추어) 랭킹 1위에 올랐다. LPBA 신생팀 하나원큐는 우선 지명권 5장 중 1장을 김진아에게 할애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미 LPBA 무대로 옮긴 김가영도 하나원큐에 입단하면서 김진아는 우상과 ‘원투 펀치’를 이루게 됐다.

지난 시즌 랭킹 1위 김가영이 같은 팀에 있으니 최고 라이벌은 2위 스롱 피아비(32·캄보디아)다. 김진아는 “연맹 소속 때 피아비를 상대로 성적이 좋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마추어 시절 김진아는 피아비를 상대로 2승 2무 1패를 기록했다. 김진아는 “이번 시즌 대회 9번 중 최소 한 번 이상은 우승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연습구가 놓인 당구대로 향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