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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방화 용의자와 법정서 대화조차 해 본 적 없다”

입력 | 2022-06-10 13:27:00

참사 모면 변호사 “법정서 터무니 없는 비난 퍼붓기도”
용의자, 건설사 퇴직뒤 지사장 행세…재건축 분양 홍보도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진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 감식반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2022.06.09. 뉴시스


9일 대구 수성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러 자신을 포함해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의자 천모 씨(53)는 A 대형건설사를 다니는 등 건설업에 종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천 씨는 A 대형건설사 영업본부에 십수 년 간 재직했다. 그 뒤 2010년경 회사를 퇴직했지만 자체적으로 이 회사 대구경북지사장 명함을 제작하는 등 자신이 여전히 재직 중인 것처럼 직책을 속여 재건축사업 분양 등을 홍보해 문제가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A 대형건설사에는 대구경북지사장이라는 직책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 방화 용의자 천모 씨가 범행을 준비하는 모습

천 씨는 약 4년 전부터 대구지법 인근 아파트에 전입신고를 하고 월세살이를 했다고 한다. 인근 주민 등에 따르면 천 씨는 자신의 민사소송을 위해 대구지법으로부터 약 740m가량 떨어진 52.9㎡(16평)규모의 인근 아파트 월세방을 얻어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로부터 대구지법까지는 차로 약 5분 거리로 가깝다.

천 씨의 부인 등 다른 가족들은 경북이 아닌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천 씨의 이웃주민은 “천 씨와 자주 교류하지는 않았지만 1주일에 3~4일 정도 방에 들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른 지역에도 집이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천 씨 아파트 폐쇄회로(CC)TV에는 천 씨가 범행 당일인 9일 오전 집에서부터 흰 천으로 가려진 원통형 물체를 들고 나와 이를 조수석에 실은 뒤 오전 10시 48분경 자택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후 약 4분 뒤인 10시 52분경 천 씨가 불이 난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다.

경찰은 천 씨가 자신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데 대해 앙심을 품고 피고 측 변호인을 상대로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천 씨는 2013년 신천시장 인근 주상복합아파트 시행사에 6억8000여만 원을 투자했지만 사업이 지연되자 시행사와 시행사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천 씨는 지난해 6월 1심 재판에서 패소해 항소했고, 이 소송 과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구지법 인근에 거주지를 얻었다고 한다.

천 씨가 제기한 약정금 반환 소송에서 시행사 대표 A 씨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배모 변호사(72)는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천 씨가 한차례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어 불만을 표시하고, 법정에서도 터무니없는 비판을 하는 모습을 보여 불만을 갖고 있던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나와는 법정에서조차 직접 대화를 한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대구=유채연 기자 y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