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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황규인]‘선수 학생’이 아니라 ‘학생 선수’다

입력 | 2022-06-11 03:00:00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사회인 농구에 한창 빠져 있던 때 일이다.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선수 출신 후배가 휴가 중인 현역 육군 소위와 함께 나왔다. “학창시절 내내 농구만 한 녀석이 어떻게 장교 친구도 있냐?”는 물음에 고교 졸업 후 생수 배달 일을 하던 후배는 ‘농구로 대학까지 간 친구’라고 소개했다. 농구 선수가 장교가 된 사연은 이랬다.

“중3 여름방학 때 ‘나는 농구로는 성공 못 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찾아왔습니다.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는데 아무리 ‘통밥’을 굴려 봐도 공부보다는 농구 쪽으로 대학에 가기가 수월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농구부에 남았습니다. 결국 운 좋게 ‘깍두기’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 뒤 소집 첫날 ‘그만두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학군장교(ROTC)에 지원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공부는 손을 놓은 지 너무 오래라 다른 길을 찾은 거죠.”

이날 저녁이 다시 생각난 건 탁구 유망주 신유빈(18·대한항공), 아니 정확하게는 아버지 신수현 GNS 매니지먼트 대표 때문이었다. 신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신유빈이 중학교 졸업 후 고교 진학 대신 실업팀 입단을 선택한 사정을 이야기하다 “유빈이가 ‘출석 인정 결석 허용 일수’ 제한 때문에 도저히 정상적으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 2019년 이후 대회 또는 연습 참가 때문에 학교를 빠진 경우 초등학생은 10일, 중학생은 15일, 고등학생은 20일까지만 출석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나머지 기간에는 다른 학생과 똑같이 학교생활을 하는 게 원칙이다. 신 대표는 “유빈이는 탁구에 인생을 걸었는데 그러려면 학교생활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알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려드리겠다. 신유빈 같은 ‘1등’이 아니라 고1 때부터 키 성장이 멈추는 바람에 오라는 대학 팀이 없던 후배나 운동에서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도 계속 운동부에 남아 있어야 했던 육군 소위 같은 ‘보통들’을 위한 정책이다. 신유빈은 평생 ‘너는 뭐 하느라 고교 졸업장도 못 땄느냐’는 핀잔을 들어야 할 일이 없다. 반면 세상에는 ‘운동도 못 하고 배운 것도 없는 ×’이라는 수군거림에 시달리며 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대한체육회 ‘은퇴 운동선수 실태 조사’ 최신판(2019년)에 따르면 운동선수는 평균 23세에 은퇴하며, 41.9%가 은퇴 후 무직 상태다. 취업에 성공해도 46.8%는 한 달에 200만 원을 못 번다. 현실이 이런데도 “학생 선수에게는 운동도 공부”라며 운동부원은 학교생활을 소홀히 하는 게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어른도 적지 않다.

프로야구 팀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뒤 서울대 정시모집에 합격한 신일고 야구부 출신 박건우 씨(20)는 “공부와 야구를 병행한 게 아니라 학교생활과 야구를 병행했을 뿐이다. (야구부가 아닌) 다른 친구들과 사귀다 보니 공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고 말했다. 맞다. 학교 운동부원은 ‘선수 학생’이 아니라 ‘학생 선수’다. 선수보다 학생이 먼저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