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전희철 감독 사재 털어 1200만 원 시상 자유투 13개 연속 성공, 하프라인 슈팅 이벤트 “동기부여와 훈련 분위기 끌어올린 양념” 우승 직후 방출 설움 20년 만의 인생 역전
10년 수석 코치 경험을 살려 부임 첫 해 SK 통합 우승을 이끈 전희철 감독. ‘에어본’이라라 별명을 지닌 전 감독은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춘 소통을 강조한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프로농구 SK 전희철 감독(49)은 시즌이 끝났어도 여전히 바쁘다.
지휘봉을 처음 잡은 2021~2022시즌에 SK를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연이어 정상으로 이끌며 통합챔피언에 올랐기 때문이다. 우승을 기념하는 이런저런 행사와 약속이 쏟아지고 있어 연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게 그의 얘기. 과거 ‘농구대통령’ 허재는 “우승 후 인사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다. 마음껏 즐겨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프로농구 SK를 통합우승으로 이끈 전희철 감독. 손가락으로 팀 통산 3회 우승을 상징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전 감독은 부임 초기 낮은 자유투 성공률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이색 ‘당근’이었다. 감독의 주문에 따라 SK 선수들은 훈련을 마치고 난 뒤 두 그룹으로 나뉘어 양쪽 골대에서 자유투 훈련을 실시했다. 선수 1인당 자유투 13개를 연달아 넣은 뒤에야 코트를 떠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간에 실패하면 재도전해야 했다. ‘13’은 전 감독이 선수 시절 달던 등번호. 전 감독 은퇴 후 SK에서 영구 결번된 백넘버다. 자유투를 시도하는 동안 다른 선수들은 말을 걸거나 자유투 라인 주변을 얼씬거리기도 했다. 일종의 방해 동작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확성을 끌어올릴 의도였다.
자유투 13개를 연이어 성공한 선착순 3명의 선수에게는 전 감독이 사재를 털어 5만~10만 원을 줬다. 대신 가장 늦게 ‘과제’를 끝낸 선수에게는 동료들에게 커피를 돌리도록 하는 ‘페널티’를 주기도 했다.
전 감독은 “플레이오프 같은 중요한 경기나 접전 상황일수록 자유튜의 중요성 크기만 하다. 선수들의 집중력을 키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SK 통합우승의 주역인 최준용(오른쪽)과 자밀 워니. 동아일보 DB
자유투 강화를 위한 전 감독의 약발은 있었다. 특히 SK에서 공격을 책임지는 센터 자밀 워니(평균 22.1점)와 포워드 최준용(평균 16.0점)의 자유투 성공률 향상이 눈에 띄었다. 정규리그에서 워니의 자유투 성공률은 지난 시즌 70.2%에서 74.6%로 올랐다. 최준용은 2016년 프로 데뷔 후 가장 높은 71.0%를 찍었다. 부상으로 신음했던 최준용의 지난 시즌 자유투 성공률은 53.3%에 그쳤다. 포스트 플레이가 많고 상대 수비가 집중되는 두 선수는 경기 도중 자유투 기회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자유투 라인에 섰을 때 자유롭지 못하면 전체적인 경기 흐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전희철 감독은 시즌 막판 하프라인 슈팅 이벤트를 실시했다. 선수들이 하프라인에서 초장거리 슈팅을 시도해 성공하면 30만~50만 원에 이르는 보너스를 지급했다. 장기 레이스에서 자칫 가라앉을 수 있는 선수단 분위기를 끌어올릴 의도였다. 고된 일과를 유쾌한 하프라인 이벤트로 마무리한 SK 선수들은 코트에서 더욱 신바람을 냈다는 평가다.
SK 주장 김선형은 “감독님 덕분에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생겼다”며 “자유투 집중력이 진짜 좋아졌고 성공률도 점점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상금이 걸려있다 보니 선수들끼리 선의의 경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재밌게 선수들의 훈련 성과를 높이기 위해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그걸로 만족할 뿐이다”고 말했다.
SK 전희철 감독은 동양 시절 내외곽을 넘나드는 화끈한 공격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동아일보 DB
경복고와 고려대를 거쳐 1996년 동양 창단 멤버로 입단한 전희철 감독은 ‘에어본’이라는 별명을 지닌 최고 스타 출신이다. 2002년 동양을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으며 프로무대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당시 우승 축하자리에서 전희철이 팀을 떠날 수도 있다는 구단 고위관계자의 발언이 나와 충격에 빠지더니 결국 20년 전 이맘 때 샐러리캡 문제로 KCC에 트레이드 됐다. 동양은 김승현 김병철을 잡기 위해 이현준, 현금 6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전희철을 내보낸 것. 아이러니하게도 트레이드 카드였던 이현준은 이번 시즌 SK 코치로 전 감독과 호흡을 맞춰 우승 기쁨을 나눴다.
지난해 5월 프로농구 SK 지휘봉을 처음 잡은 전희철 감독. SK나이츠 제공
KCC 이적 후 제 자리를 잡지 못하며 갈등을 겼던 전 감독은 2003년 12월 SK로 둥지를 옮겨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한 뒤 운영팀장, 2군 감독 등 다양한 보직을 거쳐 문경은 감독 밑에서 10년 동안 수석코치를 맡았다. 감독에 선임된 건 지난해 5월 일이다. 밑바닥부터 찬찬히 다시 시작한 그는 스타 의식을 버리고 전술의 기본과 소통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전희철 감독은 “20년 전 동양을 떠날 때만 해도 만감이 교차했다.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되돌아보니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우승 헹가래는 결코 쉽게 오지 않았다.
사족 한 가지. 전희철 감독의 현역 시절 통산 자유투 성공률은 어땠을까. 한국농구연맹에 따르면 74.3%였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