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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대통령도 성공한 방식으로 실패한다”

입력 | 2022-06-13 03:00:00

다변의 尹, 친구·선후배 ‘집단사고’ 위험
전임 李·朴·文도 ‘휴브리스’ 함정 빠져
검사·총장으로 성공한 윤석열, 대통령 성공하려면 검찰 멀리해야



박제균 논설주간


검찰공화국 논란을 부른 검찰 편중 인사 건(件)을 들여다보자. 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응은 다음 네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할 수 있겠다. 첫째, 가장 바람직한 건 누가 봐도 검찰 편중으로 느껴지는 인사를 안 하는 것이었다. 취임 전부터 검찰공화국 우려가 나온 만큼 최소한의 선에서 자제하는 것이 상수(上手)였다.

그런데, 했다. 그랬다면 겸허하게 국민들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두 번째 수(手)다. ‘하루빨리 국가를 정상화하려는 마음에서 믿을 만한 인사들을 찾다 보니 인재 풀이 좁아졌다. 검찰공화국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 검찰 출신 기용을 자제하겠다’고. 하지만 이렇게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수는 비판에 대해 침묵하는 거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이 많이 쓰던 방식으로 악수(惡手)에 속한다. 문 전 대통령처럼 거듭되는 비판에도 다른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임기 내내 반복되면 공분(公憤)이 쌓인다. 그러나 취임 초 대통령과의 ‘허니문 기간’에는 다소 용인될 여지가 있다.

윤 대통령이 둔 게 가장 나쁜 수였다.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 ‘도배’라는 용어 자체가 대통령이 쓰기에 부적절하고 과한 데다 ‘거번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운운하며 미국 사례를 들었으나 한국 실정과 맞지 않아 비판이 커졌다. 그럼에도 “글쎄 뭐, 필요하면 또 해야죠”라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지난번 칼럼에도 썼듯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한국 대통령사(史)에 남을 만한 변화다. 임기응변에 능한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답변하는 말 가운데 팔 할 정도는 국정의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문제는 실언(失言), 더 나가서 설화(舌禍)를 부르는 20%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 앞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라고 답한 것도 대통령답지 못한 발언이었다.

그래도 출근길 문답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 그렇다면 실언이나 설화를 줄여야 한다. 대통령의 말실수가 잦아지면 나머지 80%의 소통 언어마저 묻혀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통령이 발화(發話)하는 언어의 무게다.

윤 대통령은 다변이고 달변이다. 함께 자리를 많이 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대화의 80% 이상을 혼자 끌어가다시피 하는데, 꽤 들을 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고시 장수(長修)생이나 검사 시절, 술자리에서 ‘구라’를 풀던 스타일의 언어생활은 달라져야 한다. 덜 말하고 더 들으라.

앞으로의 출근길 문답에선 지금보다는 더 정치(精緻)한 언어가 나오길 바란다. 그러려면 국정 관심사에 자문을 하는 그룹의 범주가 훨씬 넓어져야 한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엔 검사 선후배를 비롯한 검찰 출신, 학교 친구와 선후배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친구 선후배들끼리의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윤석열은 검사 출신이어서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모든 검사가 그처럼 강단 있을 수는 없겠으나 검사나 검찰총장이 아니었다면 박근혜 문재인 정권을 연달아 들이받는 게 가당키나 했겠나. 자신을 졸지에 한국사회의 정점(頂點)이랄 수 있는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게 한 검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휴브리스(Hubris)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인간의 오만을 뜻하지만 성공한 오너나 CEO, 1위 기업 등이 자신들이 성공한 방식에 집착하다 실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금의 숱한 권력자들도 집권에 성공한 방식으로 통치하려다 실패의 길을 걸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워 집권한 이명박은 ‘패밀리 비즈니스’로, 박정희 신화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박근혜는 결국 공주의 덫에, 보수세력 교체를 앞세운 문재인은 편 가르기의 함정에 빠져 실패하지 않았나. 검사로 성공한 윤석열이 대통령으로도 성공하려면 되레 검찰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검찰과 엘리트 검사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아직도 엄존한다. 검찰개혁 얘기가 달리 나온 게 아니다. 이런 마당에 일 잘한다는 이유로 검찰 출신과 친구 선후배들을 계속 데려다 쓰면 결국 문 정권 때처럼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땐 윤석열 식 ‘소탈 행보’도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